[대만은 지금 = 류정엽(柳大叔)]
어릴 적부터 국제 이슈에 관심이 많았던 장수임 교수. 그는 현재 대만 신베이시(新北市) 린커우(林口)에 위치한 성오과학기술대학교(醒吾科技大學)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는 어릴적부터 올림픽 게임을 볼 때마다 '지고 있는 팀'을 응원하던 사람, 사회적 약자에게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랬기에 개도국 개발 문제, 국제 인권 분야를 공부하기 위해 중앙대 법대, 고려대 국제대학원에서 공부를 했다. 그는 그뒤 UN기구 등에서 인턴십을 수료했다. 국제개발 분야에서 커리어를 쌓으려 했지만 인생 계획에 전혀 없던 대만으로 오고 말았다. 그는 지금은 대만에서 일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느껴진다고 전했다.
[장수임 제공=대만은 지금] |
▲ 현재 근무중인 성오대 자랑 좀 해달라.
- 학교측은 학교와 학생들을 위한 프로젝트라고 생각되면 어떻게든 여러 기관들과 협력해서 해당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해낸다.
총장과, 부총장을 비롯해 국제처장, 학과장들은 부드러우면서도 강인한 이상적인 리더십을 지녔다. 각자의 직위가 있지만 상당히 수평적인 관계가 형성되어 있어서 회의에서도 직위에 상관 없이 모두들 자유롭게 의견을 낸다. 그리고 이 의견들이 학교 발전에 도움된다고 판단되면 상당 부분 반영, 즉각 추진된다.
그러기에 경쟁보다는 서로 도와주고 이해하는 분위기를 느꼈다.
다들 학생을 최우선으로 여긴다. 학생들의 어려움, 문제나 의견들에 대해 교수, 교직원들이 굉장히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해결해준다. 피드백이나 해결 속도도 꽤 빠르다.
학생들은 졸업 학년이 되면 의무적으로 국내 혹은 해외 인턴십을 수료해야 한다. 졸업 전에 인턴십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취직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믿기 어렵겠지만 취업률은 100%라고 보면 된다. 학교 및 교수진의 산학협력 네트워킹이 상당히 넓고 강하다.
▲ 학교에서 유일한 한국인 교수로 기존에 없던 한국교류를 혼자 다 해내고 있다. 잊지 못할 국제교류 경험담이 있다면 간단히 말해달라.
- 본교(성오대)는 2017년부터 본격적으로 다각적인 국제화, 특히 한국과의 교류를 활발하게 추진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하나의 경험담을 꼽기 보다 모든 프로젝트들이 내겐 의미가 '최초'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최초로 한국으로 교환학생 파견했고, 한국 교환학생들을 초청했다. 최초 한국 일일, 단기교류 교환학생 초청, 파견, 최초 한국 인턴십교류 학생 초청 (동아대), 한국 대학들과 학술교류 MOU체결 등를 (학술교류) 맺은 후에 실질적인 교류 성과를 냈다. 이런 교류들이 앞으로 지속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관리하는 것에 더 책임과 초점을 둘 것이다.
올해 9월 13일 한국 초청 교환학생들과 ‘대만은 지금’팀, 외부 한국어 선생님과 함께 한국 문화를 알리는 교내 행사를 했다. 떡볶이 시식과 한복 체험 행사를 진행했는데 학생들 호응이 정말 좋았다. 몸은 정말 힘들었는데 기억에 남는다.
대만 학생에게 한복을 입혀주는 장수임 교수[류정엽 촬영=대만은 지금] |
▲ 학교서 한국인 혼자인데 하나부터 열까지 다 하려면 쉽지 않을텐데, 무엇이 어렵게 느껴지는지?
- 일이 힘들거나 어렵다고 생각한 적 없다. 아이를 키우다 보니 체력이 달려서 피곤하다는 생각은 많이 한다. 결국 체력 때문에 힘들다. 성오대학교 근무를 시작할 때, 딸이 막 100일 지난 때라 학교에 아기를 데려올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있었는데 그 때마다 교수진, 학생들이 다 나서서 애기를 봐주셨다. 한국이었으면 쉽지 않았을 거다. 학교에 갚을 은혜가 너무 크다. 또, 내가 중국어가 부족하니 동료들에게 폐를 끼치면서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늘 있다.
▲ 힘들 때 격려해주 사람은 있는가?
- 진부한 이야기지만, 같은 학교에 근무하는 남편이 늘 투덜거리면서도 무슨 일이든 뒤에서 도와주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랬기에 그 어떤 난관에도 다 해낼 수 있었다. 물론 많이 싸우기도 했지만 제일 고마운 사람이 남편이다. 갑자기 눈물이 난다. 울어도 되나.
내가 무슨 일을 해보겠다고 하면 언제나 "해봐!"라고 지지해 주는 학교 동료분들이다. 한국과의 교류를 힘껏 지지하시고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시는 부총장님, 교수님들, 국제처 직원들, 학생들 모두 나의 은인이다.
▲ 장수임 교수가 학교에 온 뒤로 학교에 생긴 변화가 있다면? 간략하게 꼽아달라.
- 우리 학교로 한국 학생들이 오기 시작하면서 우리 학생들도 한국으로 교환학생이나 하계/동계 캠프, 단기 전공 연수 등을 가게 됐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정기적인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는 점을 꼽고 싶다. 또 정규 교양과목으로 한국어 과목이 개설됐다는 점이다.
▲ 직장에서 자기성장의 동력이 있다면?
- 교내에서 유일한 한국인이기에 내 모든 행동이 동료들과 학생들에게 ‘한국인은 저렇구나’ 하고 전반적인 이미지로 굳어질 수 있다. 거기서 오는 책임감이 나를 더 성장하게 만든다. 고마운 일이다.
▲ 그럼 인생의 좌우명은 무엇인가?
- "세상에 태어난 이유는 내가 가진 사랑을 나누고 베풀면서 살기 위함"이다. Be the best version of me, Be one of a kind!
▲ 스트레스도 상당할 거 같은데 푸는 방법이 있는지?
- 일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없다. 일은 너무 재미있고 좋은데 아기가 있다 보니 양육/집안일과 일의 균형을 잡는 데서 오는 딜레마는 있다. 이를 푸는 방법은 남편이랑 대화하거나 (그러다가 싸운다.) 아주 가끔 강변에서 달리거나 울거나 (많이 운다.) 좋아하는 음료수를 사마시거나 자기계발 비디오를 보거나 그 정도다. 좋은 방법 있으면 추천 좀 해달라.
▲ 대만에서 잊지 못할 일이 있다면?
- 2011년 남편이랑 연애할 때 남편이 대만으로 초대해줬다. 대만은 생전 처음이었고, 연애 때였으니 모든 게 다 아름다운 추억이다. 자기 집에서 요리해 주겠다고 해서 갔는데 어머니가 쇼파에 누워 텔레비전을 보고 계셔서 깜짝 놀라 도망쳤던 기억이 있다.
또 있다. 몇 년 전, 남편 친구들과 화리엔으로 오토바이 여행을 갔는데, 참 인상 깊었다.
그리고, 출산? 정말 잊기 어렵다!
▲ 성취감을 언제 느끼는지?
- 우리 학생들이 한국에 가서, 새로운 교육 환경이나 문화에 노출이 되고, 성장하는 모습들을 볼 때 참 기쁘다. 남학생 하나는 한국 교환학생에 다녀온 뒤 스타일이 완전히 달라졌다. 이제 나보다 화장을 더 많이 하고 다닌다.
그리고 내가 기획하고 상상하던 프로젝트들이 실제로 진행됐을 때나, 몇 번의 논의 끝에 교류 가능성을 이끌어낼 때 등 모든 부분에서 크고 작은 성취감을 느낀다.
▲ 대만에 대한 인상은? 오기 전과 온 후 비교하자면?
- 사실 남편과 연애를 하는 와중에도 대만에 대해 ‘완전히’ 무지했다. 그 전에는 대만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고 보면 된다. 남편과 미국에서 만났기 때문에 거기서 살겠거니 했는데 남편이 대만으로 가자고 했을 때, 아무 생각 없이 '오케이'했고, 그렇게 오게 됐다.
대만에 살고 있기에 사회 문제나 정치 문제에 관심이 더 많아진 것이 큰 차이점이다. 중요한 것은 한국에 갈 때마다 열심히 대만을 홍보하고 다니는 점이 가장 달라졌다. "대만 남자 최고! 대만 사람 최고! 대만 음료수 최고! 오세요~오세요~" 뭐 이 정도?
▲ 중국어가 좀 걸린다고 말했다. 언어 소통 한계를 극복하는 본인만의 방법이 있다면?
- 속상하고 기분이 안 좋아도 학교에서는 '스마일~',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에게 발랄하게 인사 잘하기, 감사함을 적극 표현하는 것이다. 아기 돌 때 등 가끔 한국 떡이나 음료수를 돌린다. 한국 문화도 알릴 수 있으니 좋은 방법 아닌가.
고급 수준의 중국어는 잘 못 알아듣는 경우가 많아 동료들이 설명을 여러 번 해줄 때가 있다. 특히 행정업무인 문서 작성은 버겁다. 그래도 미소로 적극적으로 듣고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고개를 끄덕이고, 메모하고, 이해가 안되면 다시 확인하고 보다 적극적인 '바디랭귀지'로 소통한다. 뭔가 안 통할 때 역시 바디 랭귀지가 최고다. 그런 모습을 재미있게 생각해 준다.
동료나 학생 이름을 외우기가 어렵다. 비슷한 발음의 이름이 상당히 많다. 예를 들어 위팅, 위에팅, 웨이팅 등. 그래서 처음 만난 사람들의 이름을 휴대폰에 저장해놓고 늘 기억하려고 노력한다. 다시 만날 때 이름을 부르면 상대방은 나를 더 친근하게 대하기 때문이다.
강의중인 장수임 교수[성오과기대학교 제공=대만은 지금] |
▲ 향후 목표/계획
- 한국과의 지속적인 교류를 구축하는 것이다. 학생들이 원하고 필요로 하는, 한국과의 다양한, 신선한 교류들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학교 시스템을 잘 만들어가는 것이 가장 큰 목표다.
그밖에 늘 내가 관심을 갖고 있는 '아이들'을 위해 꼭 기여하고 싶다. 나는 늘 아동학대, 아동유기, 인권, 교육분야에 관심이 많았다. 앞으로 대만에서 이 분야에 기여하고 싶다. 그래야 죽을 때 후회가 없을 것 같다.
"‘소외된 사람들, 약자’에 늘 마음이 갔지만 역설적으로 늘 나 자신은 ‘강자’가 되고 싶었다. 어릴 때 이소룡이 나오는 영화들에 빠져 부모님에게 중국 소림사를 보내 달라고 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늘 치열한 삶을 사는 사람들을 동경했고, 지금도 그런 사람들의 인생을 다룬 영상들을 즐겨 본다. ‘강자’가 되어 ‘소외된 사람들’에게 가진 것을 나누는 그런 삶을 꿈꾼다." - 장수임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