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은 지금 = 류정엽(柳大叔)]
대만에는 다른 나라와는 다르게 한인 교민 잡지가 없다. 수년 전 한인회에서 발행한 '헬로 코리아'가 잠깐 있기는 했다. '대만은 지금'도 잡지 발행을 꿈 꾼 적이 있었다. 꿈만 꿨다.
대만에 거주하는 씨아시(필명)는 어느 날 본지에 연락을 해왔다. 대만에 거주하는 한인들을 위한 잡지를 만들겠다며 말이다.
한인 잡지 '도시락' 창간 준비호 발행을 앞둔 씨아시와 '깨알' 인터뷰를 가졌다. 다음은 일문일답.
시아씨도 아니고 씨아시라는 익명을 쓰시는 이유가 있으신가요? 개인적으로 시아씨가 더 좋은데...
네이버 카페 별명도 그렇고, 블로그도 그렇고 씨아시라는 필명을 사용하거든요. 아시는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제가 전형적인 아싸(아웃사이더)라서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누리고자 해서 그렇습니다. 그리고 씨아시는 씨앗을 부르는 말이에요. 씨앗아~ 씨아시(씨앗이) 잘 지내니? 이런 느낌인데 별로 느낌은 없죠? 고등학생때 생각해서 유치하긴 해요. 그래도 일관성 있게 쓰고 있어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누리고자 대만 한인 잡지를 만들기로 하신 거군요. 잡지 '도시락'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 주세요.
도시락은 한국 문화 잡지예요. 재대만 한국 교민지 역할을 하겠지만요. 한국어를 아는 모든 분들이 공유할 수 있고, 한국어를 몰라도 한국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함께 공감할 수 있는 문화잡지가 될 거예요. 그리고 도시 안에 소소한 즐거움을 담을 수 있는 잡지로 자리잡고자 합니다.
도시 속 즐거움이라...그렇군요. 왜 하필 잡지 이름이 도시락인가요?
대만에 사는 한국분들이 대부분 타이페이(台北), 타오위안(桃園), 신주(新竹), 타이중(台中), 가오슝(高雄) 등 주요도시에 거주하시잖아요. 모두들 맛난 것을 많이 드셔 보셨겠지만, 대만 도시락을 안 드셔 보신 사람은 없을 거예요. 작지만 출출한 배를 채워주는 착한 가격의 도시락의 이미지를 가지고 가고 싶었어요. 저는 서울에서 태어나 자랐는데 교외로 소풍 갈 때 도시락에 대한 추억도 있고요. 저처럼 도시락에 담긴 추억 하나는 있을 거 같은데 그러한 정서도 느껴지면 좋겠어요. 그래서 잡지 매 회마다 새로운 도시락을 여는 느낌으로 봐 주셨으면 해요. 특별히 고급 호텔 도시락이 아니라면, 대부분 화려하진 않죠. 그래도 나름 작은 고기 한 점, 나물 반찬들이 어울리고 국도 함께 따라오면 기분 좋잖아요. 다들 큰 기대는 없지만 소소한 볼거리를 드리고 싶네요.
그래서 작게나마 눈요기를 할 수 있는 소재를 모아서 담자고 보니 도시락이 되었어요. 다만 도시락은 한자로 都市樂에요. 대만분들은 오해하실 수도 있지만, 한국어 능통자분들께서 주변 대만 친구들에게 설명해 주셨으면 해요.
도시락의 깊은 의미가 느껴지네요. 도시락과 관련된 어떤 사연이 있으신가요?
사실 개인적으로 대만에 살면서 힘든 순간이 꽤 많았어요. 절망적인 상황에 부딪히고 극단적인 생각이 들 때도 있었고요. 그런데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니 모두 그냥 지나가더라구요. 이윽고 드는 생각이 다들 말하지 못하지 힘든 순간들을 묵묵히 견디고 있겠구나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한국에 사는 친구들은 외국에 살면 부럽다고 하고, 저도 만나면 힘든 이야기하기 싫어하다 보니 저의 처량한 모습을 많이 본 녀석은 바로 이 도시락이네요.
도시락이 대만 생활의 동반자인 셈이네요.
네. 도사락하면 가끔 제가 힘겹게 하루를 보내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들른 도시락 가게에서 도시락 하나 주문해서 금새 다 먹어 치우고는 다시 기운 내서 집으로 향하던 길이 생각이 나요. 유학 시절에는 도시락 먹으면서 과제도 하고, 시험공부도 하고, 직장 다니며 야근할 때는 도시락 까먹으면서 일하기도 했어요. 도시락이 가끔 제 삶을 대표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
삶을 대표하는 도시락. 그럼 어떤 사람들이 잡지를 보면 좋겠어요?
한글을 볼 수 있는 모든 사람들이 보면 좋겠어요. 대만에 거주하시는 한국분들과 그 가족들, 한국 친구와의 공통소재가 필요한 대만 친구들, 한국어 학습자들이 보는 것을 권장해요. 개인적으로는 제가 한국어를 가르치기도 하고 유학을 도운 대만친구들도 적지 않은데요. 그 친구들도 계속 봐주면 좋겠어요. 특히 한국어 능력시험인 TOPIK 시험을 앞두신 한국어 학습자분들도 연습 삼아 보셔도 좋을 거예요. 전체적으로 토픽 4~5급 정도로 글을 작성하고, 간단한 문구들은 3급 정도만 되어도 알아볼 수 있게 제작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인력이 충원된다면 중국어로 번역하여 게재할 예정이에요. 한국어를 못하는 대만분들도 대만 사는 한국인들의 이야기들을 엿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도시락은 누구와 함께 만드나요?
아직 누구라고 말하기는 어려워요. 중간에 막힐 때 도움을 주시는 분들이 다수 있어서요. 그건 발행한 뒤에 기회를 찾아 정리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다만 주축이 되는 것은 대만의 유학생들이고, 앞으로도 다른 유학생들과 현지 대만학생들과 협력해서 만들려고 하고 있습니다.
잡지를 발행하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사실 잡지 발행은 모두가 말렸어요. 하지만 온라인에 “대만은 지금”이라는 유명 블로그도 있고, 영상으로도 여러 채널이 있었어요. 그런데 온라인의 정보가 너무나 많다 보니 중요한 정보를 선별해서 정리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대만은 지금”처럼 양질의 정보도 있지만, 여기저기 “카더라 통신”처럼 온라인에 떠도는 검증 안된 자료들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필터링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칭찬 감사합니다. 인터뷰 중에 칭찬 듣기는 처음이네요. 도시락 컨셉 같은 게 있나요?
무엇보다 도시락은 레트로 감성을 가져 가고 싶어서 인쇄본을 선택했습니다. 온라인 소식을 인쇄하여 각자의 이야기가 담긴 감성을 나누는 뉴트로 감성 문화지라고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렇다고 온라인으로 보실 수 없는 건 아니에요. 다만 기사들은 다른 온라인 채널을 통해 공유할 예정입니다.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 좀 부탁 드립니다.
도시락 잡지를 위해 특별히 타이둥(台東) 츠상(池上)에 다녀 왔어요. 대만 도시락 중에 심심치 않게 보이는 간판이 츠상판바오(池上飯包)잖아요. 타이둥을 가다 보니 츠상이라는 쌀이 유명한 곳이 있더라구요. 그리고 화롄(花蓮)과 타이동 사이를 지나는 중간 역이 츠상인데, 옛날에는 화롄과 타이동 사이의 기차 시간이 8시간 거리였대요. 그래서 중간 역인 츠상에서 도시락을 먹어야 했다더군요. 츠상이 또 쌀 재배지로 유명해서 그 쌀로 만든 도시락이 유명했다고 해요. 대만 사람들이 현재 사용하는 볜땅(便當)이라는 말은 외래어이고, 판바오(飯包)가 옛부터 대만에서 사용해온 도시락을 뜻하는 말이라고 하네요.
아참. 도시락도 점심을 담는 그릇을 의미하는 '도슭'이라는 어원에서 탄생한 순수 한국말이예요. 이러한 뿌리를 이해하고, 우리만의 암호처럼 도시락이라는 명칭을 쓰게 되었어요.
목마른 도시에 가랑비처럼 발행되는 도시락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모두의 가슴에 젖어 들 수 있는 잡지가 되면 좋겠네요.
끝으로 제가 언젠가 대만에서 한국으로 돌아가더라도, 이 도시락을 한국에서 받아 보면서 대만 소식을 계속 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