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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과 함께 떠난 타이둥(台東) 여행


[글= 진상헌]

"타이둥(台東)을 여행하지 않았다면 대만을 여행하지 않았다"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너무 고민하지 마라. 당연히 없을 것이다. 이는 내가 막 지어낸 말이기 때문이다.

[진상헌 촬영]

근대화가 되어갈수록 현대인들의 삶의 질은 높아지겠지만 각 나라 고유의 풍습과 문화는 점점 설 곳을 잃어가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그런지 대만에서 전통적인 모습을 제일 잘 간직한 곳 중의 하나인 타이둥은 대만을 좀 더 깊숙하게 알기 좋은 지역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대만의 과거와 현대가 공존하는 곳이라고 '내가 타이둥을 소개하면 어떨까'라고 이번 타이둥 여행의 대한 내용이 정리될 무렵. 나는 타이둥을 벗어나 가오슝으로 향하는 기차 안이었다.

그리고 기차 안에서 2018년의 목표를 하나 더 추가했다. 2018년은 한국인인 나에게 해외 여행이기도 한 대만 국내 여행을 통해서 대만의 숨겨진 여행지들을 알리는 것이다. 내가 경험한 대만 여행을 통해서 느낀 진짜 매력은 쇼핑이나 먹거리 따위가 아니라 모든 것이 '빨리빨리'에 익숙해져 소중한 것들을 놓치고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조금 더 느리게 아니 천천히 걷는 것부터 느낄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이번 여행은 총 일정은 1박 2일로 타이둥 '둥허'(東河) 와 '타이둥 산림공원'(台東森林公園)에 다녀왔다. 일정이 더 길면 더 좋았겠지만 짧은 시간을 틈타 자주 다니는 것에 더 익숙한 듯하다.



가오슝에서 어느덧 3년 넘게 살고 있는 나는 익숙하게 원하는 목적지의 기차표를 끊고 내 좌석이 어디인지 혼란스러움 없이 자리에 앉았다.

가오슝에서 타이둥은 기차로 3시간 30분 정도 소요되는데 내가 이번에 탄 기차는 운 좋게 2시간 6분만에 도착할 수 있었다.


타이둥 기차역에는 택시 승강장과 버스 정류장이 있다. 택시는 보통 합승을 하는데 요금은 1인당 200 대만달러이다. 그렇지만 나는 요금이 116 대만달러인 버스를 타기로 했다. 곰곰히 생각해 보니 택시도 나쁘지 않은 듯 하다.

"둥허"는 타이둥역에서도 약 30km 이상 떨어진 거리다. 버스를 타면 족히 40분 정도는 달려야 도착한다. 그냥 택시 탈 걸 그랬다.


둥허는 유명한 여행지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저, 바다를 끼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작은 삶의 터전이다. 서핑하기 좋은 지역으로도 알려져 있다.

나는 하루 정도는 이곳의 일부가 되고자 자전거를 타고 길이 보이는 대로 쭉쭉 달렸다.

그러다 이곳에서 처음 생명체들과 마주했다. 태어난지 2개월쯤 되었을까? 꼬리를 흔들며 나를 반겨줬다. 이 모습이 이곳의 평소 분위기를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녀석들은 신나게 내 뒤를 따라오기 시작했고, 나는 녀석들의 속도에 적당히 맞춰서 달리고 멈추기를 반복했다.

그러다가 이녀석들은 반대편에서 다른 사람이 오는 것을 보자마자 이내 방향을 바꾸고 그를 따라갔다. 녀석들의 뒷모습을 나는 그저 웃고만 있었다. 어쩌면 다행이다. 내가 이 녀석들의 엄마는 아니니 말이다.


소들은 참 묵묵하고 한결 같다. 그저 먹는 것에 집중하는 녀석들. 내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는 강아지들보다 묵묵히 먹기만 하는 녀석들은 내가 떠나는 순간까지 단 한번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자유롭게 사육되고 있는 닭과 거위들. 문을 열어주면 알아서 외출하고 시간 되면 알아서 들어와서 잘 것만 같다.


물가로 달려가는 소떼들. 사진에서는 느낄 수 없지만 소들이 웃고 있다. 그것도 해맑게 말이다.

한번 상상해보라.  소들이 웃고 있다. 웃음 소리를 따라 해보면 도움이 된다. 그것도 아주 해맑게 말이다. 혹시나 해서 알려주는데 소의 울음소리는 "음메"다.


사람들에게 삶의 터전을 빼앗긴 것이 슬퍼서일까? 뭐가 그리 힘들어서 그랬을까? 다리 위에 아슬아슬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 원숭이 녀석.


이 사진은 내가 주인공이 아니라 내 옆에 개가 주인공이다.
아마 저 개도 1년 전에는 강아지였겠지?
아까 신나게 꼬리를 흔들면서 나를 따라오던 그 강아지들처럼?


둥허에서 사람보다 더 많은 동물들을 구경하면서 하루를 보낸 후. 다음날 아침 일찍 나는 타이둥 시내에 들렸다. 곧바로 타이둥역으로 갈 계획이었지만 택시 기사님이 타이둥 시내를 100원에 태워준다고 하셔서(물론, 합승이다) 1시간 간격으로 오는 버스를 포기하고 오게 된 것이다.

이른 아침 타이둥 시내는 조용했지만 시장은 그 반대였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 중 하나가 대만 시장을 둘러보는 것인데 타이둥 시장 또한 대만에서 흔히 볼 수 있었기에 다른 무언가가 없을까? 라는 생각으로 서둘러 나와서 내가 향한 곳은 타이둥산림공원이었다.


타이둥산림공원은 자전거로 다니는 것을 추천한다.
바로 옆에 타이둥 공항이 있는데 얼핏 봐도 공항보다 공원이 더 크지 않나 싶다.


공원 안에 있는 호수인데 이 공원에서 내가 본 호수는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이길 저길 걷다 보면 바다와 연결되는 길이 있는데 마치 영화를 보다가 영화 배경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다.  

“만약 누군가가 백지를 주면서 지상 낙원을 그려보라고 한다면 나는 꼭 저렇게 그릴 것만 같다”  


사진기가 담아내는 색감의 기술은 눈으로 보는 것 만큼이나 완벽에 가깝지만 그 풍경을 담아내는 렌즈의 기술은 제한적이다. 렌즈로 담아낼 수 있는 범위가 눈으로 볼 수 있는 범위보다 좁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진에는 소리를 느낄 수 없다. 귀에서 이어폰을 빼게 만드는 바람 소리, 지금 막 시작하는 커플들의 대화처럼 간지러운 대화 같은 새 지저귀는 소리, 잠시나마 모든 삶의 고민을 잊게 해주는 파도 소리, 간혹 들려오는 비행기 소리는 여행을 좋아해서 일상을 여행처럼 사는 나에게 어쩌면 꽁꽁 싸매 두었던 한국의 그리운 감정선의 끝을 건드리고야 말았다. 하지만 이 모든 소리는 내 눈이 느끼는 것을 보좌할 뿐이다. 지금 내 눈은 마치, 천국의 계단과 지상 낙원 사이에 존재하는 또 다른 세상을 보는 것만 같았다.


나는 내 감정을 소비할 시간이 많지 않았다. 자전거를 1시간만 빌렸다는 사실이 뒤늦게 떠올랐다.  그리고 나는 열심히 입구로 달렸다. 인정 많아 보이는 할머니가 혹시라도 반납 연체료를 요구할 것만 같아서 나는 꿈에서 다시 현실 세계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하루종일 공원에서 머물고 싶었다. 그곳의 공기가 너무 맑고 맛있어서 공기만 마셔도 배가 부를 것만 같았다. 또한 자연이 들려주는 하모니와 천천히 여행하는 여행자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다시 오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아침 시장에서 맛있는 도시락을 사서 자전거는 종일대여로 해서 말이다.

그렇게 나는 자전거를 반납하고 아쉬워서 타이둥역까지 도보로 약 5km를 걷기로 했다. 걷기에는 날씨도 적당했고 운동도 할 겸 말이다. 그런데 2km쯤 걸었을까? 조금 힘들다는 생각이 들 때쯤 "에이, 누가 나 좀 태워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하던 그 순간에 나는 강제로 히치하이킹(Hitchhiking)을 당했다.

지나가던 아주머니 한 분이 오토바이를 세우시더니 타이둥역에 가냐고 묻더니 태워준다고 하셨다. 30분을 더 걸어야 할 거리를 5분 만에 도착했고 5분 동안 오토바이에서 오고 간 대화는 이번 여행의 가장 멋진 선물이었다. 더불어 내려가는 길에 입이 심심하지 말라고 내 손에 무화과를 쥐어줬다. 이는 내가 타이둥에 다시 가야 하는 또 다른 이유를 만들어줬다.


진상헌 - 대만 외식 브랜드 T.K.K에서 한국 브랜드 런칭을 담당하는 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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