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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군의 횡설수설] 6.25전쟁 당시 미국이 대만 중화민국의 파병을 거절한 이유

 


1950년 7월 31일 타이베이 쑹산공항에 내린 맥아더(좌)와 그를 환영하는 장제스(우) 

 [대만은 지금 = 류정엽(柳大叔)]

대만 중화민국은 6.25전쟁에 참가하고자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 미국 때문이었다. 6.25전쟁(한국전쟁) 중 미국의 대(對) 대만 정책은 어땠을까.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이승만 대통령은 해리 트루먼 미국 대통령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트루먼 대통령은 맥아더 장군에게 한국에 군사지원을 제공할 것을 명령하는 한편 이 전쟁을 유엔에 회부했다. 안보리 회의에서 유엔군 조직을 결성, 한국을 돕기로 결정됐다. 

이때 대만 중화민국 정부를 이끌던 장제스 총통은 한국 전쟁을 지원하기 위해 3만 명 이상의 병력을 보내겠다는 서신을 유엔 대사를 통해 유엔사무총장에게 전했다. 그리고 장제스는 미국 해군과 공군을 한국으로 이동시킬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딘 애치슨 미 국무장관을 비롯한 참모들은 장제스의 중화민국 군대가 625전쟁을 지원하는 것에 반대했다. 트루먼 대통령도 반대했다. 

대만의 625전쟁 개입이 중공군과 정면으로 충돌을 일으켜 3차 세계 대전을 촉발할까봐 장제스의 군병력 지원 제안을 거부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미국 모두 장제스의 군병력 파병을 반대한 것은 아니었다. 맥아더 유엔 총사령관은 트루먼과는 견해가 달랐다. 맥아더는 미국이 대만의 병력 원조 제안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장제스 총통은 1950년 7월 4일 일본에 주둔하고 있던 군대표들에게 일본 도쿄에 있는 맥아더를 방문하라고 명했다. 그 당시 대만 측은 한국을 돕기 위한 군대를 파병하겠다는 의사를 거듭 표명했다. 

1950년 7월 31일 맥아더 장군은 미국 정부의 동의없이 대만을 극비 방문해 장제스와 긴밀한 대화를 주고 받았다. 이 둘은 트루먼 대통령의 입장과는 완전히 달랐다. 하지만 맥아더는 미국 극동 총사령관 신분이었기에 그가 보인 행보는 소련 유엔대표에 의해 안보리회의에서 거론되며 소련은 미국을 공격하는 도구로 삼았다. 

트루먼 대통령은 국제적 우려를 불러일으킨 맥아더의 행동 및 대만 정책에 대한 상반된 입장에 맥아더를 해임하기로 결정했다. 

맥아더와 트루먼은 대만 군대 파병 문제에 대한 입장만 달랐던 것은 아니다. 

맥아더의 군사적 전략과 관점은 "전쟁은 필히 이겨야 한다"였다. 그렇기에 625전쟁에서 해군은 중국 해안을 막고, 공군으로 중국 북동부를 폭격하면서 장제스의 군대를 한국에 상륙시켜야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것이 맥아더의 주장이었다. 

반변, 트루먼은 맥아더의 이러한 전략이 너무 위험하다며 자칫하면 세계 대전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여겼다. 

맥아더는 말과 행동으로 군통수권자인 트루먼에게 공개적으로 도전하기 시작했다. 트루먼은 1951년 4월 11이 맥아더를 해직시켰고, 맥아더는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돌아갔다. 

트루먼이 한국 전쟁에 지원군을 파병하겠다는 장제스의 제안을 거절한 이유는 무엇일까? 크게 세 가지로 생각된다. 

1. 5년만에 또 전쟁?

트루먼은 1945년 4월 12일 미국 대통령에 취임했다. 2차 세계대전은 같은 해 8월 10일에 끝났다. 한국 전쟁은 1950년에 발발했다. 불과 5년 만에 다시 전쟁을 참여한다는 것에 반대가 심했다. 

2. 꺼림직한 국민당과 공산당 문제

당시 북한은 중공군의 아낌없는 지원을 받고 있었다. 이때 트루먼이 장제스의 군대를 남한에 주둔하는 데 동의한다면 국공내전을 한반도까지 확대하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트루먼이 가장 골치 아파했던 것, 즉 개입하기를 꺼리는 것은 국민당과 공산당의 문제였다. 중공군은 인민지원군이라는 이름으로 북한을 지원했다. 중공군은 1950년 10월 19일부터 전쟁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1950년 10월 1일 상황이 불리해진 김일성과 박헌영은 마오쩌둥(毛澤東)에게 중공군의 직접 출동을 요청하는 서신을 보냈다.  

3. . 북한을 지원한 소련

트루먼은 소련이 북한에 무기와 장비를 지원한 것을 매우 의식하고 있었다. 이로 인해 트루먼은 한반도 정책은 남북한의 현상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그에게 있어 전쟁 종식을 위해 북한군을 완전히 초토화시켜버리는 것은 소련군을 끌어들여 제3차 세계대전을 촉발시키는 방아쇠나 마찬가지였다. 




한편, 이승만 대통령은 전쟁에 소극적이었던 트루만에게 불만이 많았다. 차후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휴전을 위해 한국을 방문하자 이승만은 휴전 반대와 북진 통일을 앞세웠다. 난감해진 아이젠하워는 3일간 방문 일정 중 이승만과 1시간 가량만 만나는 데 그쳤다. 

이어 1953년 4월부터 휴전회담이 가속화되자 이승만의 저항도 거세졌다. 휴전을 반대하는 시위가 여기저기서 벌어졌고, 국회에서는 '북진통일'을 지지한다는 결의안이 통과됐다. 

이승만은 이어 6월 18일 2만 5천명에 달하는 반공포로들을 대통령 직권으로 석방시키는 조치를 단행해 휴전을 대놓고 막고자 했다. 미국은 이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휴전협정에 포로 교환 문제는 당시 매우 중요한 의제였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승만에게 대놓고 경고를 하자 이승만은 유엔에서 한국군을 분리시켜 독자적으로 북진하겠다고 맞섰다. 이 무렵 미국은 이승만을 제거한다는 '플랜 에버레디'를 논의했다. 이승만을 구금 후 미 군정을 실시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실행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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