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위안 [인터넷 캡처] |
[대만은 지금 = 류정엽(柳大叔)]
동지는 일 년 중 낮이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긴 날이다. 동지는 몇 월 며칠일까? 매년 날짜가 다르다. 2020년 동지의 날짜는 12월 21일, 2019년의 동지는 12월 22일이었다.
동지는 1년을 24절기로 나누었을 때 스물두 번째에 해당한다. 음력 날짜로 계산하기 때문에 크리스마스처럼 양력 날로 고정되어 있지 않아 '활절'(活節)이라고도 불린다.
낮이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길기에 고대인들은 음극의 날(陰極之日)을 양기의 날로 맞이하는 날로 간주했다. 고대인들은 동지를 새해의 시작으로 간주하여 1년에 버금가는 중요한 날로 여겼다.
'후한서'에는 동지 전후로 군자는 몸을 정결하게 하고 관리들은 일을 하지 않는다는 기록이 있다. 한대 시대 관리들은 동지를 축하하기 위해 하루 쉬었다고 전해진다.
명나라 때는 집집마다 쌀을 빻아 탕위안을 만들고 동짓날을 알고 있었다는 말도 전해진다. 또한 당나라와 송나라의 황제들도 이날 하늘에 조상을 숭배하는 성대한 의식을 거행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우리의 경우 고려 후기까지 당나라의 달력을 사용했기에 동지가 새해로 취급된 것으로 전해진다. 1309년 고려 충선왕 때 들어와서야 현재 우리가 지내고 있는 설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우리 나라에서도 "동지에 팥죽을 먹어야 한 살 더 먹는다"는 등의 말을 하는 것도 여기에서 유래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대만에서는 동지에 팥죽 대신 탕위안(湯圓)을 먹는다. 탕위안은 주로 원소절에 먹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탕위안은 찹쌀로 만든 쫄깃쫄깃한 둥근 떡이다. 탕위안이 둥근 것은 원만함과 화목 등을 상징한다고 전해진다.
이는 마치 우리가 동지에 먹는 팥죽의 찹쌀단자 같기도 하고 송편 같기도 하다.
탕위안은 물에 넣고 끓여 만든다. 이 탕위안을 끓이는 탕에는 사람들의 기호에 따라 땅콩, 팥, 설탕, 소금 등을 넣기도 한다. 그 맛은 달거나 짭짤하다.
대만에서는 동지에 타위안을 먹는 풍습의 유래에 대해 푸젠(민남)지역에 살던 가난한 부부의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이 가난한 부부에게는 어린 딸이 있었다.
어느 날 부인이 세상을 떠나자 남편은 부인의 장례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딸을 팔기로 결심했다.
이를 알게 된 딸은 슬픔에 휩쌓이다 못해 기절했고, 아버지는 그를 깨우기 위해 찹쌀탕 한 그릇과 탕위안 몇 개를 사 가지고 와 딸을 깨우는 데 성공했다.
그들은 이 먹을 것을 두고 서로에게 양보했고, 먹지 못했다. 이를 먹고 난 뒤 영원히 헤어질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몇년 후 이 딸은 이 딸은 부잣집 딸에게 팔려갔고 갑자기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다. 집 문 앞에 크고 둥근 탕위안 두 개를 문에 걸어서 아버지를 찾고자 했다. 그렇게 일년이 지나고 또 일년이 지났다.
현재까지 이 딸이 아버지를 찾았다는 이야기는 없으며 이 이후로 민난지역에서 탕위안을 먹는 풍습은 보편화되어 갔다.
그 뒤 탕위안은 이 지역 사람들의 풍속으로 굳어져 갔다. 가난한 사람들은 찹쌀로 작고 둥근 탕위안을 만들었고, 부자들은 설탕과 땅콩 가루 등을 넣어 만든 더 큰 탕위안을 만들어 먹었다.
어른들이 손으로 탕위안을 만들면 아이들은 그 옆에서 찹쌀을 이용해 다양한 새나 동물 모양의 떡을 만들기도 했다. 또한 음양이 교차되는 동지이기에 많은 사람들은 탕위안을 먹으면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믿음이 있었다.
이는 남송시대의 문인 뤼유(陸游, 육유) 작품에도 "동지에 밥을 먹으면 한 살 더 먹는다"고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