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짹슨의 대만앓이]
나는 추운 날씨를 무척이나 싫어한다. 그래서 남들이 덥고 습하다고 짜증을 낼 때 겉으로는 나도 짜증 나는 척 하면서도 속으로는 후덥지근한 대만의 날씨를 즐겼다. 그렇게 몇 년 간 겨울과는 거리를 두고 살았던 내가 한국에 와서 어느덧 두번째 겨울을 보내고 있다. 이제는 익숙해질 법도 하지만 겨울이라는 녀석은 이름만 설레일 뿐이다.
이런 날은 항상 같이 떠오르는 음식이 있는데 바로 ‘대만 소고기면’ 이다. 특히나 요즘 같은 날씨에는 퇴근 후에 포장마차에서 먹는 오뎅 국물만큼이나 그립다.
한 여름에 먹는 뜨거운 소고기면
한 여름에 대만을 여행해 본 사람들이라면 혀를 내두를 정도로 습하고 더운 지역이다. 게다가 가오슝은 대만에서도 제일 더운 지역 중 하나인데 나는 그곳에서만 3년 넘게 거주를 했었다. 자연스럽게 나의 단골 가게도 가오슝에 있는데 한국 여행객들에게도 제법 알려진 ‘항원우육면’이다.
이곳은 가오슝에서 삼대를 이어온 소고기면집으로 알려져 있는데, 내 마음 속 영원한 1등이다.
처음 먹었던 그날 이후로 한달에 1 ~ 2번은 혼자서라도 먹으러 갔었고, 지인들이 놀러오면 꼭 데리고 가고 같이 중국어를 공부하던 외국인 친구들도 데리고 갔으니 족히 100번은 간 듯 하다.
소고기면 집에서 대만 연예인을 보다
한번은 여러 나라에서 모여든 어학당 동기들과 방문했을 때였다. 1층은 다 같이 앉을 곳이 마땅치 않아서 2층으로 자리를 잡았는데 입구부터 온갖 촬영 장비들이 눈에 띄었다. 시선은 장비를 따라서 어느 지점에서 멈추었고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아줌마와 눈이 마주쳤는데 중국어 공부 때문에 열심히 봤던 대만 드라마에서 본 사람이 식사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대만의 유명 연예인이 이 근처에서 촬영을 끝내고 식사를 하러 온 곳이었다. 괜히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 여기 유명하지! 연예인도 오는 곳이라고!
처음에는 식사를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 조용히 주문을 하고 음식을 기다렸는데 몇몇 현지인(직원들 포함)들은 굳이 말을 안 붙이는 눈치였고 내 일행 중에서는 아무도 모르는 듯했다.
결국 나는 용기를 내서 안 되는 중국어와 영어롤 섞어 가면서 겨우 겨우 내 의사를 전달했고 다행히도 자기를 알아봐 주는 외국인이 고마웠는지 기분 좋게 촬영에 응해주었다.
이 일이 있고 난 이후로 사장님은 항상 나를 기억하고 한국어 메뉴판을 주셨다. 그렇게 3년이 흘러도 여전히 한국어 메뉴판을 주셨다.
비빔면도 있지만 절대적으로 국물을 추천하며, 식탁에 놓여진 소스와 간 마늘을 소량 넣어서 휘휘 적어준 후에 먹어야 한다! 꼭 그렇게 먹어야 된다!
면을 사랑하는 한국인들도 인정한 맛
한 번은 정말 친한 동생이 놀러 와서 첫날부터 데리고 갔는데 정말 맛있게 먹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다음날 점심 때 내가 뭐 먹을래?' 라고 물어봤을 때 동생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어제 거기 또 가자!"
알 수 없는 뿌듯함이 느껴졌다. 이건 마치 수 많은 외국인들이 BTS 콘서트에 열광하는 모습을 보며 느끼는 일종의 애국심과도 비슷 했다. 어느덧 가오슝 사는 한인으로서 동화된 듯 했다.
개인적으로 가오슝에서 먹었던 소고기면의 그 첫맛을 아직도 잊지 못해 지금도 내 마음속 1등 소고기면 집은 가오슝에 있지만, 그래도 1등이 있으면 2등도 있는 법이다.
2등은 타이베이 역 근처에 숨어 있는데 가끔은 내 마음속 2등 소고기면 집이 그리울 때가 있다. 정확히는 맛보다는 그 분위기가 그리운 듯하다.
타이베이의 11월은 한국의 서울처럼 적당히 가을 분위기가 나고 한 여름에 익숙했던 우리는 급격하게 추위를 느끼고 뜨끈한 국물이 그리워지면 이곳을 찾아갔다. 타이베이역에서 조금 벗어나 골목길로 뒤 섞여 있는 곳에 있는데 골목을 돌고 다시 한번 더 돌아야 나오는 그곳. 그리고 환한 불빛과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겹쳐서 보일 때 정겨움이 있다.
한국의 포장마차 정도로 작은 공간이라서 갈 때마다 합석은 기본이고 항상 대기줄이 있지만 자리에 앉아서 주문을 하고 소고기면을 기다리는 그 시간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국물은 더 달라고 하면 무한정 더 퍼주는 정이 있다. 그런데 그랬던 기억들이 어느덧 2년 전 추억으로만 남아 있다. 코로나 시국에 이제는 그때의 기억들이 조금은 희미해져 가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