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은 지금 = 류정엽(柳大叔)]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군에 의해 강제로 위안소에 배치된 대만의 마지막 위안부 생존자 할머니가 일본 정부로부터 미안하다는 사과 한 마디도 듣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22일 대만 위안부구원재단은 이날 마지막 위안부 생존자 할머니가 지난 10일 밤 향년 9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고 뒤늦게 밝혔다. 위안부구원재단은 고인이 된 할머니가 생전에 남긴 유언에 따라 발인식이 끝난 뒤에서야 소식을 뒤늦게 알리게 되었다고 했다.
여성구호협회 관계자는 사회복지사들이 할머니의 가족과 연락을 하거나 할머니 댁에 가서 할머니와 대화를 자주 나누곤 했다며 할머니의 사망 소식을 접했을 때 매우 안타까워했다고 전했다.
재단은 위안부 이어 "할머니들은 모두 떠났지만 그들의 모습과 정신은 늘 마음 속에 남아 있을 것"이라면서 "할머니들의 죽음으로 군성노예의 역사적 진실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만 교과과정, 국사관, 역사책 등에 위안부와 군성노예의 역사적 진실을 기록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며 앞으로도 일본 정부에 위안부와 그 가족들에게 사죄와 배상을 계속 요구하겠다"고 강조했다.
대만에서는 1992년부터 위안부 피해자 등록을 받기 시작했다. 1997년까지 등록을 마친 위안부 생존자는 58명으로 집계됐다. 위안부구원재단의 통계에 따르면 대만 위안부는 최소 1200명 이상으로 추산됐다.
재단은 1996년부터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해 일본을 오가며 일본 정부에 사과를 요구해왔다. 사오타오라는 위안부 할머니는 생전에 "금전적 보상은 필요없다. 미안하다라는 한 마디면 된다"고 했다. 하지만 2007년 일본 대법원은 대만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게 패소 판결을 내렸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에 따르면 본인이 원해서 위안부로 가지 않았다. 선중 할머니는 생전에 군 빨래 해주러 지원했는데 하룻밤 세 명의 성노리개로 전락했다고 했다. 다른 이들은 필리핀, 중국 광둥 등으로 간호조무일이나 식당일을 하러 떠났지만 결국 모두 성접대를 하는 위안부로 끌려갔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들은 하루 평균 3명 이상의 일본군을 상대해야 했고 일본군은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 피임약을 강제로 먹이는가 하면 강제로 자궁을 드러내기까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