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캡처] |
[대만은 지금 = 류정엽(柳大叔)]
1941년 5월 27일 생으로 일제시대 때 대만 신주저우(新竹州) 중리쥔(中壢郡) 중리제(中壢街) (현 타오위안시 중리구) 출생으로 객가인(客家人)이다. 객가어와 민남어를 구사한다.
쉬신량은 독립성향의 대만 야당 민진당의 주요 대표인물 중 하나로 손꼽힌다.
그는 국립정치대학교 정치학과에 입학한지 반년 뒤인 1960년부터 1979년까지 국민당에 몸 담았으며 1977년~1979년 타오위안현장을 역임했다.
1979년 당시 그는 현장 신분으로 시위를 발기했으며, 이로 인해 내란죄 등으로 인해 결국 현장직에서 탄핵됐다. 그가 발기한 시위는 당시 국민당 계엄시대의 최초 시위집회 사건이다.
이해 7월에는 황신제(黃信介), 스더밍(施明德) 등과 함께 메이리다오(美麗島) 잡지를 만들면서 공개적으로 비국민당 인사의 창당 운동인 당외운동(黨外運動)을 벌였다.
12월 그가 미국에 있을 때 메이리다오 사건이 발생했는데, 발생 후 국민당 정부는 그의 대만 입국을 거절하면서 추방된 해외 생활을 했다.
1989년 쉬신량은 중국대륙을 통해 대만에 돌아왔지만, 당국은 반란죄로 그를 기소하며 10년형을 구형했다.
이듬해 리덩휘(李登輝) 총통은 그를 특사로 출옥시켰다.
민진당 창당해인 1986과 2000년, 2008년~현 2018년까지 민진당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 1992~1993년, 1996년~1998년에 걸쳐 민진당 당 주석을 역임했다.
1998년 쉬신량은 2000년에 치러질 총통선거에 참가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당내에서는 대중들에게 인기가 좋던 천수이볜(陳水扁) 전 총통을 총통 후보로 밀어야 한다는 분위기가 일었다. 결국 민진당 내부에서는 당내 강령을 수정하면서 천수이볜 전 총통이 총통 후보자가 됐다.
이듬해 1999년 5월 그는 탈당을 선언하며 무소속으로 선거에 출마해 낙선했다.
2000년 최초의 민진당 집권 정부가 들어서면서 쉬신량은 공개적으로 천수이볜 총통의 정책을 비판했다.
2008년 천수이볜 전 총통의 임기가 끝나자 쉬신량은 민진당으로 복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