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오중닝 제공 = 대만은 지금] |
*편집자 주: 대만인 독자께서 한국어로 직접 정성스럽게 써서 보내주셨습니다. 최소한의 편집으로 원고의 느낌을 살리고자 하였습니다. 대만스러운 표현이 있더라도 양해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본 원고는 '대만은 지금'의 의도와는 무관함을 알려드립니다.
[글 = 대만인 차오중닝(曹仲寧)]
핵무기로 유명한 북한은 한국의 북쪽에 위치하며, 많은 사람이 '세계의 민폐'로 간주하는 중국은 대만의 서쪽에 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대만 남자도 군대에 가야 된다. 대만은 2012년부터 1994년 이후 출생자를 대상으로 5주 기초군사교육과 11주 군사특기 교육으로 의무복무 기간이 축소되었다.
대만 남자는 548일을 복무하는 한국 남자와 비해, 운이 좋은 것 같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에게 있어서 군대에 가는 것 자체가 기분이 썩 좋지 않은 일이기에 복무기간이 한국보다 짧다 해도 군대라는 것 자체가 힘겹게 들린다.
대부분의 한국 남자들은 대학교 2학년이 되기 전에 군대에 간다고 들었다. 대만에는 남자가 고등학교나 대학교에서 졸업한 후에야 군대에 가는 경우가 흔하다. 고3이나 대학교 4학년 때 구/시/군청 병역과가 보내는 건강검사 통지서를 받는다. 지정된 날에 병원에서 건강검사 통지서를 가지고 건강검사를 받아야 한다. 검사의 목적은 사람의 체력 상태가 군대에 맞는 지 확인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병역 면제를 위해서 건강검사를 받기 전날 고의적으로 나쁘게 식사를 하고, 비만 혹은 체중 부족 등을 이유로 병역 면제를 원한다.
그리고 체대역을 복무하는 상황도 점점 늘고 있다. 체대역은 군사훈련을 대신하여 공공기관에서 복무하는 제도를 뜻한다. 그런데 112일 군사훈련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건강검사를 받은 후에 제비뽑기를 통해 육군, 해군, 공군, 해병대에서 복무할지를 결정한다. 육군의 정원이 가장 많기 때문에 육군으로 가는 인원이 제일 많다. 나도 육군이 되었다. 하지만 내 동생은 공군에서 복무했다. 나는 대학원을 졸업한 뒤 군대에 갔다.
청궁링 훈련소 입구 [위키피디아 캡처] |
2020년 10월 6일부터 청궁링(成功嶺)에서 복무하며 국방의 의무를 다했다. 대만 군사를 소재로 한 드라마, 영화 대부분이 이곳에서 촬영돼 이곳은 대만에서 가장 유명한 국군 훈련소다. 타이중에 위치해 장화와 가까운 청궁링은 대부분의 대만 남자에게 있어서 ‘진짜 사나이’가 되는 곳을 대표한다.
입영 당일 나는 타이베이역에서 집합하고 출석을 체크한 뒤에 바로 입영 전용 기차를 탔다. 사람들이 민간 생활에서의 마지막 식사와도 같은 도시락을 먹은 후 객차는 너무 조용해졌다. 훈련소와 가까워질수록 분위기가 엄숙해졌다. 장례를 치르는 영구차처럼 적막했다. 다두 기차역에서 신병들을 태운 버스가 훈련소에 간 후에 군인들이 버스를 올리고 신병들의 체온을 재고 소독제를 뿌렸다. 아무리 기본적인 방역 조치를 취하는데도 군인들이 입은 군장이 나치 군인들이 입은 전투복과 같은 느낌이 들어 오싹하게 했다.
신병들의 건강이 정상이라면 큰 집합소인 호위대로 끌려가 중대, 분대를 나눠 편성됐다. 대부분의 신병들은 숙소가 가까웠고, 군대에서 오랜만에 만난 초중고 동창생들 만나는 경우가 흔하다. 나처럼 오랫동안 연락도 없고 친하지도 않은 동창생들을 만났다.
다음으로 간부들은 키에 따라 분대의 순서, 그리고 학번을 나누는데, 각 분대 중, 가장 높은 사람은 '반터우(班頭, 집합할 때, 각 분대 맨 앞 또는 맨 오른쪽에 서서 '기준'이 되는 사람)'라고 한다. 반터우는 항상 가장 많은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다. 각 분대 다 맡은 임무가 있다. 예를 들면, 식사할 때 전 중대에게 급식을 담아서 주는 분대는 '다판반(打飯班)'이라고 하고, 훈련을 받기 전에 군용매트, 정수기 같은 기자재를 옮기는 분대는 '기자재 분대(器材班)'라고 한다. 그 다음에 무한정 자료를 채우면서 보급품을 받는 것을 기다렸다. 보급품들은 다 전에 전역한 분들이 남겨놓은 것들이기 때문에 '선배들의 사랑'이라고 부른다.
입대 첫날은 서류 작성, 보급품 수령, 머리 자르기, 제식훈련 등 정신없는 일정을 소화하고 나서야 허둥지둥 잠에 빠져들었다. 그날 나는 잠들기 전 모기장에 가려진 천장을 계속 응시하며 내가 어떻게 이런 황당한 하루를 보냈는지 생각했다. 앞으로 정말 황당한 상황에서 군대생활을 이어 가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 때문에 운동, 식사, 목욕, 잠자는 시간을 제외한 시간에는 마스크를 착용하고 훈련을 받아야 했다. 2주마다 14개의 마스크를 보급 받아 하루 한 개씩 바꿔 사용했다.
대만 유명 군사 드라마 '신병일기' 중 청궁링 모습 |
무더위가 가시지 않은 10월 초였다. 마스크가 얼굴을 가리고 군복이 온몸을 꽁꽁 감싼 상태라 얼마 지나지 않아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다행히 1~2주 동안은 어렵지 않은 지원병 모집 수업을 듣고 있었다. 여러 부대의 장관이 찾아와 신병들에게 각 부대를 소개했다. 대만 남자들은 군대에 가야 한다. 대만은 현재의 병역 제도는 징병과 모병을 병행하고 있다.
대만에서는 군인에 대한 인상이 좋지 않다. 보통 군인이라고 하면, 진로에 대한 방향이 없고, 저학력 또는 전문성이 없고, 그저 대충대충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선택하는 직업이라는 고정 관념이 있다. 그럼에도 조교, 장관들이 지원병의 복지가 얼마나 좋고, 현재 국군의 전력이 어느 정도인지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이들은 다른 신병도 지원병을 하라고 농담으로 종용했다. 안 하는 것은 인생 최대의 손해인 것처럼 말이다.
각 부대에서 모집하는 간부들의 화법을 보면 대체적으로 해당 부대의 환경, 분위기를 추정할 수 있다. 예를들어 특전부대의 장교의 소개는 간단명료했다. “스스로 도전하라”, “자기 성장 추구하라” 등을 슬로건으로 앞세웠다. 외진 지역에 있는 부대에서는 “끝내주는 경치”, “매달 9,700 대만달러를 더 준다”고 강조했다. 다른 어떤 부대는 예쁘고 세련된 여성 장교들을 소개하며 직업 군인을 하라고 꼬셨다. 간부가 보낸 설문지에 고려를 표시하거나 어떤 특정 부대에 관심이 있으면, 훈련 시간에 해당 부대의 모집관이 훈련병을 불러 상세히 상담을 했다. 심지어 조교들도 지원병에 관심이 있는 사람을 우대해 줬다.
우리 중대에서는 당시 간친회를 열었다. 간친회는 입대 후 첫 휴일이며, 부모들이 군대에 가고 있는 아들을 면회할 수 있는 날이다. 작은 청친가는 간친회 하루 전 부모와 본인이 지원병 신청서를 작성하면 훈련소에서 외출할 수 있는 휴가다. 학자금 대출을 받고 문과에 다니던 나는 군대에서 받는 안정적인 급여와 규칙적인 근무가 학자금 상환에 도움이 되고 틈틈이 연수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신청했다. 휴가 동안 심사숙고를 한 후에 세상 밖으로 뛰어들어 보기로 했다. 그래서 조교에게 번복하고 싶다고 말했더니 모집장관, 조교, 중대장이 계속 치근덕거렸다. 처음에는 조교가 지원병 복지가 다른 직장에 비해 얼마나 좋은지 계속 말하며 번복하지 말라고 설득했다. 그러더니 급기야 내가 하고 싶은 직업까지 폄하하기 시작했다. 결국 나는 결점 없는 이유를 만들어 그 조교의 치근덕거림에서 벗어났다.
직업은 귀천을 막론한다. 지원병을 하는 어떤 사람은 경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아직 뚜렷한 목표가 없는 상황에서 과도기적으로 생각하고, 어떤 사람은 진심으로 국가에 봉사하고 싶어하기 마련이다. 자신의 결정에 책임을 질 수 있다면 이는 좋은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입대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국경일을 맞이했다. 당시 간부들은 여러분을 위로하기 위해 이날 저녁 '간담상조'라고 하는 프로젝트를 열었다. 그들은 우리에게 음료와 지파이를 배달시켜 먹을 수 있게 해주고, 각 분대에서 공연 준비를 하라고 요구했다. 아직 익숙하지 않은 상황이라서 공연은 어색해 보였지만, 평소에는 두려움에 떨던 간부가 노래를 부르는 등 특별한 국경일을 보냈다. 휴가를 가기 전 받은 모집수업 외에는 정말 힘들었다. 무슨 일을 해도 빨리 해야 했고, 허겁지겁 급식을 먹어야 했고, 급하게 샤워해야 했고, 단체 행동도 자유롭지 않다. 훈련 초반에는 단체 생활에 적응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과거 습관에 물든 생활에서 잠시 벗어나 단체에 융화되고, 사람들에게 통제당하니 적응할 수 없었다. 매일 밤 잠을 자면서 두세 번 잠에서 깨어나기도 했다. 휴가 전에 조교는 우리를 데리고 훈련소 후문으로 가서 휴가 절차를 알려줬다. 그때 나는 후문 밖에 지나가는 오토바이를 보게 됐다. 그저 평범한 서민들의 풍경이었지만 괜히 울고 싶어졌다. 휴가 기간 동안에는 부대 밖에서 신호등을 기다리며, 천천히 밥을 먹고, 편안하게 샤워를 하는 평범한 일상의 행동을 즐겼다. 나는 "바깥 세상이 참 아름답구나!"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2019년 차이잉원 총통은 청궁링 훈련소를 시찰했다. [인터넷 캡처] |
휴가를 보낸 뒤 쉬웠던 지원병 모집 수업이 없어졌다. 그리고 실수에 대해 관대했던 간부들의 태도도 사라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2주간의 훈련을 받아서 군대 생활은 습관이 되었다.
그 다음으로 T-65 돌격소총으로 사격을 하고, 소총을 분해하고 닦는 법을 배웠다. 각개전투, 수류탄 투척 방법 등을 연습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훈련은 실탄 사격이었기 때문에 사격술 예비훈련을 받았다. 격장에서 실탄사격 중의 총기사고는 곧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에 사격장에서 간부나 교관, 분대장, 조교들의 신경은 잔뜩 곤두 서 있는 상태였다. 그렇기 때문에 평소라면 웃으면서 넘길 수 있는 사소한 장난이나 뻘짓거리에도 바로 고함 소리와 함께 구수한 욕장단을 체험하게 된다.
사격 외에 가장 많이 연습했던 과목은 총기손질이었다. 이것은 총기 조작을 시험하는 항목으로, 총 분해와 결합하는 단계를 잘 파악해야 하며, 대사도 숙지되어 있다.
총검술은 청궁링에서 훈련받는 동안 가장 인상적이었다. 검정을 일주일 앞두고 전 중대가 밤에 호위대를 뛰어다녔다가 집결하고 빼앗아 마는 등 단체의 묵계를 시험하는 내용이었다.
각개전투 부분에서는 마치 연극을 하며 전쟁을 모의하는 듯한 상황이 연출됐다. 검정 전 일주일은 모든 기초군사훈련 기간 가장 힘들었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매일 피곤한 몸을 이끌며 꿈나라로 들어갔다.
기초군사훈련 마지막 주는 바로 ‘검정주’이었다. 3일 동안 4주의 훈련 받은 내용에 대해 시험을 보는 것이다. 검정을 시작하기 전날, 기초군사훈련이 끝난 후 어느 부대에 복무를 해야 하는지를 보려면 추첨을 해야 했다. 그러나 우리는 지원병,다른 섬에서 복무하기 원하는 사람 외엔 원래 훈련소에서 남아 2단계 군사특기를 받기 때문에 이 추첨도 형식에 그쳤다.
대만에서는 제대 후 8년 안에 언제든지 다시 소집돼 1~2주간의 군사훈련을 받을 수 있는 ‘쟈오자우(教召)’라고 하는 제도가 있다. 조교들은 "지금의 군사 제도가 조금 바뀌었는데, 만약 성적이 좋지 않으면 앞으로 교소를 받을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하지만 실제 쟈오자우는 전적으로 추첨으로 이뤄지기에 성적 평가와는 별 관계가 없어 보인다. 내 성적이 좋지 않을까 봐 무섭거나 걱정되지 않았다. 간부는 평소보다 엄격했다. 나는 진먼에서 2계급 복무를 신청했기 때문에, 솔직히 말해서 나는 '어차피 검정이 끝나면 청궁링을 떠날 수 있다'라는 태도로 시험을 봤다. 다시 말해 평정심으로 찾은 상태에서 시험을 봤다. 잘못했어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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