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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군의 횡설수설] 대만의 최초 해상순찰대의 시작은 '북한' 때문

 

[해순서 페이스북 캡처]


[대만은 지금 = 류정엽(柳大叔)]

대만에서는 해경(해순서)이 제2의 해군으로 불린다. 단순 순찰, 구조라는 업무가 아닌 방어, 전투를 위한 업무도 수행하기 때문이다. 지난해에는 대만이 직접 건조한 군함 자이호(嘉義號)가 진수식을 갖고 해순서에 인도됐다. 자이호는 대공미사일 장착이 가능하다. 이러한 해순서는 공식적으로 해병대의 업무를 분담하기 위해 2000년에 본격적으로 출범했으나 그 역사를 살펴보면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창설 계기는 북한이 원인이 됐다. 아니, 북한 덕분이었다. 

해순서에 따르면 1964년 북한 특수부대가 한강을 이용해 서울을 침투한 사례를 본 중화민국 정부는 중공군도 북한군처럼 해상을 이용한 방식으로 대만을 침투할 것이라고 보고 대비하고자 했다. 중공군이 단수이허(강)를 이용해 타이베이에 침입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자 무장한 쾌속정을 단수이허에 배치하는 방안이 1967년 국방부에서 열린 제3차 군사수장회의에서 발의, 통과됐다. 그리하여 1968년  9월 21일 단수이허에는 현 해순서의 원조인 단수이수상경찰순찰대가 탄생이 발표됐다. 이듬해인 1969년 3월 1일 단수이수상경찰대가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 순찰대는 ‘대만성 경무처’ 소속으로 타이베이현(신베이시의 옛 명칭) 경찰국의 관리감독을 받았다. 예산 편성도 소규모로 이루어진 만큼 그저 단수이허 일대의 지킴이 역할만 했다. 이들이 타던 배는 국방부 정보국이 마련해준 M5 소형보트 두 척이 전부였다. 이 수상경비대는 1985년이 되어서야 35톤급 쾌속정 세 척을 보유하기 시작했다. 규모는 현 해순서와 비교할 수 없지만 영토를 적으로부터 보호하며 치안 업무를 담당한다는 임무 만큼은 같다고 할 수 있다. 

수상 경찰 이야기는 수년 전 해순서 관련 자료를 보다 알게 됐다. 언젠가 우리 한국 사람들에게도 알려주면 좋겠다 싶었다. 단수이는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 손꼽히는 관광지 중에 하나다. 아름다운 석양과 더불어 역사를 간직한 이국적인 건축물들이 있어 유럽을 방불케 하는 곳이다. 그렇다 보니, 현지에서는 영화나 드라마 촬영지로도 사랑 받고 있다. 사실 단수이 일대의 역사와 건축물을 되새겨보면 과거에도 지리적으로 군사적으로 요충지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굳이 우리나라에 빗대어 말하면 강화도쯤 된다고 해야 할까. 

해순서의 조상인 단수이 수상경찰이 창설된 배경에 우리 한반도가 참고가 되었다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 북한 특수군이 한강을 이용해 침투하는 것을 참고한 사례다. 만일 한반더가 전쟁을 치르지 않고, 남과 북으로 분단되지 않았다면, 대만으로 패퇴한 중화민국 정부의 수상경찰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거나 느즈막히 창설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만 해순서가 말한 1964년이라는 숫자가 유독 눈에 들어왔다. 해순서가 사회관계망 서비스를 통해 해순서의 연혁을 소개하면서 1964년이라는 연도와 함께 북한군이 한강을 이용해 서울을 침투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그뒤 1964년이란 숫자에 상당히 많은 시간을 보냈다. 내가 가진 자료로는 1964년에 이 지역에서 어떠한 사건이 발단이 되었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1964년이라는 연도는 틀렸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1964년 북한 특수군이 한강을 통해 서울을 침투했다면 분명 우리나라 신문에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당시 우리 나라는 박정희 대통령 집권 시절로 현재와는 달리 북한에 적대적이었으므로 북한군이 침투했다면 대서특필 되었을 것임이 분명한데 내가 자료검색 능력이 부족했는지 찾을 수 없었다. 1964년에 북한 괴뢰군이 한강을 통해 서울로 왔다는 것을 확인할 길이 없어 우선 연도에 약간의 오차가 있을 수 있다는 가정 하에 1964년과 비슷한 시기를 생각해보기로 했다. 

현재 젊은이들은 상상하기 힘들지도 모르겠지만 이 시기의  북한 GDP는 우리보다 높았다. 당시 북한은 소련제 기관총 등을 모방 생산할 수 있었고 1967년에는 방사포까지 자체 생산했다. 

김일성은 1965년과 1975년 남침을 계획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휴전 뒤에도 무기 생산을 확대한 것도 전쟁 준비의 일환이었다. 2013년 중국 인민대 교수는 중국 외교부가 기밀해제한 문서를 근거로 김일성이 1965년 주북한 중국 대사에게 전쟁을 일으킬 것이라며 중국에 파병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것이 한 중국 교수에 의해 날조된 주장이라고 여기기에는 다른 정황들도 있기에 무리가 있어 보인다. 

북한은 1965년 특수부대 중 하나인 경보병 연대를 창설했다. 1967년에는 군단에 저격여단이, 전방에는 경보병 연대가, 그리고 124군부대도 창설됐다. 124군부대원들은 이듬해 1월 21일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해 청와대를 습격했다. 이는 김신조 사건 또는 121사건으로 잘 알려져있다. 1968년에는 남침을 위한 북한 특수부대원 수가 2만 명에 달한 것으로 전해진다. 1965년 7월 7일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지점에서 북한 잠수정이 발견되기도 했다. 1964년에는 인혁당 사건으로도 시끌시끌했다. 

[인터넷 캡처]

이 무렵에 가장 큰 사건은 1·21 사태라고도 불리는 '김신조 사건'이었다. 나는 대만이 이 사건을 참고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규모가 이 정도쯤 돼야 중화민국 정부가 위기 의식을 느끼고 참고 자료가 될 가치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김신조 사건은 북한군 31명이 한강과 만나는 임진강을 이용해 대한민국에 잠입, 그뒤 북악산을 타고 청와대로 향해 대통령을 암살하려다 실패했다. 이들이 건넌 임진강 주변은 한강과 만나 강폭이 넓어지며 하구에는 강화도가 있다.  

대만이 밝힌 1964년이 정확하지 않을지라도 해상순찰대가 출범한 해까지 당시 정황을 미루어 보면 북한군은 종종 한강 하류 지역을 이용해 남쪽으로 내려 왔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이 위치는 오늘날에도 탈북, 월북 기사를 보면 종종 언급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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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꿀팁] 대만 주소의 영문주소 표기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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