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은 지금 = 류정엽(柳大叔)]
무능하고 못난 사람들이 '환경' 탓을 한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다른 논리도 있다.
어처구니 없는 묻지마 연쇄 살인을 저지른 한 일본의 범죄자. 그는 살인을 저지른 이유는 나의 '자유 의지' 때문이 아니라 망가진 뇌 때문이라고 항변했다. "내 탓이 아니라 뇌 탓"이라는 것이다. 이런 논리는 종종 법원에서 받아들여져 살인자는 감옥 대신 병원으로 간다.
이런 사람은 무능하고 못나서 환경 탓을 한 것일까?
4월 4일 오후 모처럼 음악회에 다녀왔다. 모처럼 중산당도 구경했다. 얼마만에 다시 와 보는 곳이던가. 실내악 연주회는 대체 얼마만인 건지 햇수를 세어 보니 열 손가락이 모자랄 지경이었다. 한국에 있을 때는 연주회, 뮤지컬 등을 자주 봤다. 대만에서는 이상하게 볼 기회가 드물다. 주변 환경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기대보다 상당히 수준 높은 연주자들의 연주에 감탄사를 연발했다. 국가급에 버금갔다. 유학을 하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수준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저 정도 실력을 쌓기 위해서는 연습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음악회는 중간만 보고 나와야만 했다. 내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결정이었다. 나는 하고 싶은 것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인생이다. 공연조차도 끝까지 볼 수 없는 삶이다. 정말 인간답게 아니 인간처럼 살고 싶다. 하고 싶은 것, 하고 싶던 것을 할 수 없는 환경이다.
무대 위에 오른 이들이 피나는 노력을 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나이 지긋한 연주자들, 대만이라는 땅에 온 눈 파란 연주자들 모두 어딘가에서 그들의 위치에서 후임 양성에 힘쓰는 이들이다.
이들의 환경은 우리나라보다 열악하다. 이들이 가진 기량을 생각할 때 이러한 열악한 환경은 참 아쉽게만 느껴진다.
공연을 통해,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죽자살자 자신의 발전과 성장을 위해 노력하는 이들의 모습을 봤다. 부러웠다.
능력이 있다고 믿는 이들은 적어도 노력할 수 있는 개인적인 환경이 주어져 있다. 연습을 하고 동지들을 만나고 그 가운데 피를 말리는 선의의 경쟁을 한다. 때론 치열하기도 하고 때론 더럽기도 한 그 경쟁 말이다.
하지만 능력이 있어도, 이미 손에 익은 기술이 있어도, 아예 손조차 댈 수 없는 환경이라면 그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평생 축구밖에 모르는 축구 선수가 다리에 부상을 입어 공을 영원히 찰 수 없게 된 상황에서 감독, 코치 자리 마저 보장 받을 수 없는 그런 빌어먹을 상황 말이다.
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졌다면 그 환경이 어떻든 해야 한다. 그 환경이 열악하다고 불평을 해서는 안된다. 그 환경조차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지금 내 환경에서 할 수 있는 게 무엇인가? 답을 찾고 있는 중이지만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그래서, 어쩌면 남들과 전혀 다른 다이내믹한 인생을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대만에 있는 한국인 중에서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이들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