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왕융웨이 의사[타이베이룽민병원 캡처] |
[대만은 지금 = 류정엽(柳大叔)]
1천여 명의 에이즈 환자를 돌보며 언론의 주목을 받아왔던 대만 감염외과 전문의 왕융웨이(王永衛)가 세상과 작별했다고 25일 대만 연합보가 보도했다. 향년 63세.
타이베이 룽중(榮總)병원 감염외과 전문의를 지낸 왕융웨이의 추모식이 이날 거행됐다.
신문은 왕융웨이의 일대기를 재조명했다. 왕융웨이는 37년간 의사 생활을 하면서 1천여 에이즈 감염자를 돌봤다.
지난 7월 15일은 37년의 병원 근무를 뒤로 퇴직한 날이다.
동료들은 퇴직할 나이가 다가오지 않은 왕융웨이의 그만둔다는 사실에 의아해 했다.
그는 방광암과 폐암을 앓아 왔다. 물론 그의 지인 대부분은 이를 모르고 있었다.
그의 아내도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암을 판정 받은지 1년도 채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생전의 그는 "최근 2~3년간 중병을 앓는 환자의 가족에서 중병 환자로 살아왔다. 임상실험을 주도하던 나는 신약 테스트에 참여하라는 제안까지 받았다. 그렇게 하얀 가운과 환자복을 오갔다"며 복잡한 심경을 밝혔다.
그의 마지막 화학 치료는 지난 5월이었다. 그는 치료를 받으면서도 환자를 돌보기 위해 병원에 갔다.
1천여 감염자를 돌본 경력의 그를 대신할 의사는 찾을 수 없었다.
그는 암으로 인해 계속 치료 받는 인생이 계속 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는 인생의 끝이 멀다고 여기며 돌보던 환자를 계속 돌보기로 결심했다. 몰론 그의 일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도 알고 있었다.
하루가 멀다하고 그를 기다리는 환자는 만원이었다. 그는 그를 찾은 환자들이 더 급해한다는 것을 알았기에 더 열심히 진료했다. 멈추지 않았다.
그의 아내가 세상을 떠난 날에도 슬픔을 뒤로 한 채 환자들을 진료했다. 아내가 사망할 당시 그는 병원에서 야간 진료를 하고 있었다. 이날도 예약은 만원이었다.
그는 아내의 사망으로 당장 병원을 뛰쳐 나가고 싶었다. "아내의 죽음으로 마음에 큰 구멍이 난 것 같았다"고 그는 말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진료를 기다리는 환자들에 대해 생각했다. 누구는 먼 지방에서 어렵게 올라오고, 누구는 중요한 일을 포기하면서까지 진료를 기다리고, 누구는 복용한 약이 몸에 맞지 않아 당장 바꿔야 하고.
당장 그의 근무를 대체할 의사도 없었다. 그렇다고 다 내팽개쳐 버리고 당장 아내를 보러 뛰쳐 나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딸에게 아내의 뒷처리를 부탁했다. 그렇게 밤 9시가 됐다.
사망 전 그는 "당시 내가 아내를 잃은지 아무도 몰랐다. 지금도 다른 사람들은 내가 암에 걸렸단 사실을 모르고 있다"고 회고했다.
아내는 폐암에 걸렸다. 암 진단을 받았을 때는 암세포가 뼈와 뇌에 전이된 상태였다. 생존 가능한 시간은 단 3년이라는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
그뒤 평소 아내와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하던 왕융웨이는 독일로 가족 여행을 가기로 했다. 하지만 그는 가족 여행마저 참가하지 못했다. "이것이 내 마음 속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아픔이 됐다"고 그는 말했다.
어느날 그는 진료가 끝난 뒤 검사를 받으러 갔다. 여느 환자들처럼 번호표를 뽑고 2~3시간을 기다렸다. 그를 본 동료 의사는 먼저 검사를 해 주겠다며 호의를 베풀었다.
그는 순간 생전의 아내도 자신과 비슷한 상황을 겪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는 "당시 부인도 이곳에서 몇 시간을 기다렸을 것을 생각했다"며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그 병원에 전문 의사로 근무하는 남편(본인)이 있었고 결국 그 남편은 다른 사람들만 돌봤다. 그 남편은 단 한번도 진료 받으러 온 부인을 만나 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부인이 세상을 떠난 뒤 부인이 떠난 빈 자리는 거대한 블랙홀로 다가왔다"며 두 마디만큼은 입에 올리지 않을 것을 다짐했다고 말했다.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자", "진작에 알았으면 좀⋯⋯."
그는 "'다시 한 번'은 우리에게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기회가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