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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특집] 한국야구에 대만인으로 처음 진출한 쉬성밍(徐生明)


[대만은 지금 = 전미숙(田美淑)]

가오슝(高雄) 출신의 고 쉬성밍(徐生明·서생명·1958~2013) 감독은 한국 프로 야구 첫 진출자 왕웨이중(王維中)보다 먼저 한국 야구 역사에도 큰 공헌을 한 선수다.



한국 실업야구팀 한국화장품에서 활약했던 쉬성밍(徐生明) [위키페디아]
한국 실업야구팀 한국화장품에서 활약했던 쉬성밍(徐生明·서생명) [위키페디아]

그는 1984년 한국에 유학생으로 건너와 실업야구팀 한국화장품에서 5년간 에이스로 활동했다.

그는 한국 야구에 최초로 너클볼을 선보였다. 너클볼은 공에 회전이 전혀 없이 예측이 힘들기에  스크루볼, 자이로볼과 함께 마구의 하나로 불리기도 한다.

1984년에 그는 한국 실업리그 최우수투수상도 수상했다.

또한, 중앙대학교 교육대학원 체육연구소에서 석사 학위도 받아 대만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첫 감독이다.

한국에서 프로 야구가 발전되면서 이에 참여하길 원했으나 그 당시 외국인 선수 제도가 마련되지 않아 한국 프로 야구에 참여하지 못하고 대만으로 귀국했다.

한국화장품에서 투수로 활약하던 쉬셩밍[쉬셩밍야구발전기금회]

대만에 돌아간 그는 왕성하게 활동했다.

그는 여러 팀의 감독을 맡아 통산 3차례 대만 시리즈 우승을 달성해 '대만 국민감독'으로 불리며 큰 인기를 누렸다.

한국 실업야구팀 한국화장품에서 활약했던 쉬성밍(徐生明·서생명) [나무위키]

2004 아테네올림픽 출전티켓이 걸린 2003년 11월 일본 삿포로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에서 쉬 감독이 이끄는 대만 국가대표팀은 한국을 상대로 5-4로 승리해 한국에 패배를 안겨주기도 했다.

그는 1999년 조직폭력배의 승부조작 제안을 거절했다가 길에서 한 괴한이 휘두른 흉기에 찔리기도 했다.

그는 이다신뉴(義大犀牛)의 감독을 맡아 활동하다 2013년 심근 경색으로 5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사망한 2013년부터 그의 야구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쉬성밍배 전국소년선수권대회'를 개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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