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세익]
2017년 5월 25일.
처음 싱가포르 도장이 내 여권에 찍히는 순간이었다.
모든 것이 깨끗했고 정갈했던 그곳.
하지만 모든 것이 인위적이라고 느껴졌던 곳.
엄격한 규범 아래에서 살아가지만 사람 사는 곳인지라 인간미 넘치는 풍경 역시 존재하던 곳.
나에게 싱가포르는 그런 인상을 안겨 주었다.
대만에 살고 있기 때문인지 싱가포르 역시 차이니즈(중국인이라고 하지는 않겠다) 문화권인 국가 중 하나라서그 나라를 더 알고 싶고 이해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던 찰나 이 책을 손에 넣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남편의 일 때문에 해외 체류 경험이 꽤 있는 주부로 약 4년 간 싱가포르에서 생활하며 자신이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중심으로 썼다.
사실대로 표현하자면 이 책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꽤 많다.
일단, 내용이 깊지가 않다. '싱가포르 개설'이라고 할 정도의 깊이를 바라지는 않지만 싱가포르의 문화나 역사에 대해서 조금 더 깊게 서술했다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 그래도 싱가포르가 식수원이 전혀 없다는 사실은 알게 되었다.
그리고 저자의 필체에서 싱가포르에 대한 부정적인 느낌이 강하게 느껴졌다.
저자의 필체가 강하기 때문인지 조금 더 간결하게 썼다면 좋았을 문장도 조사 하나, 부사 하나 때문에 부정적인 느낌이 강하게 느껴진 것이 아쉽게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자신이 싱가포르에서 한국어를 가르쳤다고 했는데 같은 일을 하고 있는 나로서 싱가포르 한국어 교육 현황에 대한 언급의 거의 없고 그냥 학생들이 맹목적으로 한국 남자와 연애하거나 결혼하고 싶어한다정도로만 자신의 교육 현장 경험을 언급해서 조금 아쉬웠다.
싱가포르 가이드북을 제외하고는
싱가포르에 대한 서적이 거의 없는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이 책은 단비와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는데
위와 같은 이유로 조금 실망이 컸다.
읽고 난 후에도 뭔가 허전한 책이라고 해두고 싶다.
[전미숙]
사실 나는 원래 싱가포르에 별로 관심이 없다. 왠지 그곳은 금방 지겨워질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이 책을 읽었는데, 이 작가는 싱가포르에 애정이 있는걸까? 하는 생각을 했다.
싱가포르 사람들과 좋았던 행복했던 에피소드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내가 잘못 기억하나?
그냥 싱가포르에 살다가 겪은 좋지 않은 기억들로 싱가포르의 다양한 모습을 나열한 듯하다.
그래도 몰랐던 걸 많이 알게 됐다. 내가 너무 싱가포르를 모르는구나 생각하면서 읽었다.
2년 간의 국방의 의무, 초등학교 때 성적으로 미래가 달라지는 교육 제도(좀 충격), 엘리베이터까지 따로 쓴다는 메이드의 존재, 출산을 부추기는 독특한 캠페인, 왈츠를 추는 사람들, 냄새의 괴로움 등등…
책 프롤로그에 이런 말이 나온다. “세상이 싱가포르에 호감을 가지고 다가올 것을…”.
하지만 나는 많은 것을 새롭게 알게 됐지만 싱가포르에 대한 호감도는 올라가지 않았다.
[류정엽]
나에게 싱가포르는 그저 '사람 사는 곳중 하나'로만 여겨졌다. 연이어 떠오르는 단어는 리콴유(李光耀, 1923~2015), 중앙정부의 거센 권력과 이에 따른 강력한 처벌제도, 경제 대국, 난양과기대, 거대한 사자상, 화려한 호텔, 국가급 언론사 '스트레이츠 타임즈' 정도였다.
싱가포르를 몰라도 너무 몰라서 읽게 된 책이다. 대만에서 한국어로 된 책을 구한다는 건 하늘의 별따기다. 게다가 싱가포르에 관한 교양서도 많은 편이 아니다. 어렵사리 지인을 통해 이 책을 한국에서 공수했다.
이 책이 기발했다면 유리벽과 고약한 냄새였다. 이 책은 고약한 냄새가 나는 유리벽 속에 나를 가두었고 나는 여기서 행복을 추구하는 싱가포리안과는 달리 빠져나가고자 하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다행히 저자의 간결하고 깔끔한 문장 덕분에 이내 현실로 돌아왔다.
이 책에서는 '냄새'라는 단어가 줄곧 등장한다. 향기가 아닌 냄새. 저자는 어떤 상징적 의미로 냄새를 등장시켰을까. 책을 끝까지 읽는 순간까지 내 머릿 속에는 '냄새'가 강력하게 남아 있었다. 대만 시골의 할머니가 파는 고약한 취두부 냄새와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라는 상상도 하면서 말이다.
이는 소위 '핵맛집', '꿀팁'을 포스팅하기 위한 블로거들에게는 적합하지 않다. 싱가포르의 아름답고, 수려한 뭔가를 기대한 이들에게는 실망감을 안겨줄 것만 같다.
저자는 싱가포르의 냄새에 대해 부정적인 뉘앙스로 글을 풀어간다. 저자가 겪은 이야기들과 잊을만 하면 등장하는 싱가포르 정책 이야기들을 볼 때마다 내 사고는 그저 '냄새'로 귀결됐다. 그 냄새는 '악취'라는 단어를 떠올릴 정도로 심각했다. 내 상상력이 너무 무한해서 그랬을까. 결국 나는 '냄새'에 갇혀 버렸다.
이내 이 책은 제목대로 나를 '유리벽'에 가둬 버렸다. 국가의 첫 인상을 좌우한다는 싱가포르 공항에 설치된 유리벽은 '국가'라는 큰 프레임으로 설정된다. 밖에서는 볼 수 있지만 침범할 수 없는 고유한 영역 또는 내부에서 밖을 볼 수 있어도 뭔가를 포기해야만 하는 영역이랄까.
저자는 유리벽을 통해 싱가포르가 살아남기 위해 어떤 취사를 했는지, 국민들은 생존과 번영을 위해 자유가 아닌 국가 통제로의 순응을 택했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4년간의 현지 경험과 깨달음도 철저하게 '냄새'와 '유리벽'에 가둔 채 한국인의 시각에서 주재원의 아내로, 아이의 어머니로, 글을 쓰는 작가와 기자로 싱가포르를 충실하게 풀어간다.
싱가포르에 관심 또는 환상이 있는 사람이 이 책에서 '싱가포르 찬양'을 기대한다면 실망이 클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술술 읽히는 문장으로 '냄새'와 '유리벽'이라는 프레임을 굳건히 지켜간다. 적절하고 효과적인 조사의 사용으로 프레임은 일관되게 유지된다.
그리고 긍정적인 부분조차도 긍정으로 느껴지지 않는 내용은 싱가포르의 국가의 생존 문제라는 주제와 일관됨을 느낄 수 있었다.
저자는 싱가포르의 이면을 보여주고자 한 것일까? 아니면 싱가포르가 끔찍하게 싫었을까?
국가의 생존 문제. 조금 더 자세했다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인민행동당 리콴유가 등장하며 국가생존을 위한 독재체제 구축해갔다. 게리멘더링, 민주화 운동 탄압, 정부의 검열 등과 관련된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다면 유리벽이 더 두터워졌을 것 같다.
유리벽에 갇힌 싱가포리안. 이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행복을 만들고 있다. 하지만 저자는 통풍이 안되는 유리벽 속에서 나는 냄새를 강조한다. 밖에서는 절대 맡을 수 없는 냄새.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6만 달러가 넘는 세계 8위의 경제대국인 싱가포르. 개방체제와 정부 주도로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룩한 나라. 저자는 이러한 경제발전 뒤에는 리콴유의 장기 집권뿐만 아니라 '행복'을 원하는 국민의 암묵적인 동의도 큰 견인차 역할을 했다고 본다.
이 책을 덮고 난 뒤 수년전 대학원에서 만난 싱가포르 난양이공대 교환학생들이 떠올랐다. 제도에 익숙해 있던 그들. 자존심도 센 만큼 똑똑했고, 나처럼 미래에 대해 불안해 하지도 않았다. 미래에 대한 걱정보다 고민을 했고, 이 역시 '행복'을 위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