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은 지금 = 전미숙(田美淑)]
대만 228사건은 1947년 2월 27일부터 5월 16일까지 발생한 사건이다.
228사건 당시 모습 [위키 캡처=대만은 지금] |
228사건는 2월 27일 있었던 사건이 도화선이 되었다.
2월 27일 대만 정부가 담배 밀거래를 단속하는 과정에서 한 40세 여성이 담배를 몰수당하는 과정에서 총 손잡이로 머리를 맞아 피를 흘리며 쓰러진다. 이 상황을 목격한 대만인들이 분노한다. 또한, 한 대만인 청년이 단속 직원들이 화가 난 민중들에게서 도망치는 과정에서 총에 맞는다. 그는 다음 날 병원에서 사망한다.
이 사건이 도화선이 되어 정부에 화가 난 민중들은 타이베이에 모여 이 사건 주범에 대한 처벌을 요구하던 시위가 정부와 관공서를 향한 시위로 확대된다.
228사건은 대만에 살고 있던 본성인(本省人)이 외성인(外省人)에 대한 불만을 표출한 것이라고 본다. 외성인은 1949년 국공 내전에 패한 이후 중화민국 정부와 함께 대만에 넘어온 중국인이다. 당시 본성인은 일본으로부터 정권을 넘겨받은 중화민국에 의해 정치, 사회, 경제적 부분에서 많은 차별대우를 받았다고 전해진다. 또한, 본성인들은 제대로 된 정책의 부재, 군기 문란, 경제적 퇴보, 실업률 증가 등에 대해 불만이 많았다. 담배 또한 중화민국 정부가 독점 판매했다.
천이(陳儀) 대만성(臺灣省) 행정원장은 내전 중이던 당시 중화민국국민정부 주석이던 장제스(蔣介石,장개석)에게 군대 파견을 요청한다. 이에 3월 8일 중화민국 국민당 군인이 대만에 도착해 무력으로 사태를 진압한다.
행정원(行政院)이 발표한 '228사건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사망자는 약 1만 8천명에서 2만 8천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한다.
228사건은 국민당이 38년간의 계엄령을 시행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1949년부터 계엄령이 선포되고 이 기간 동안 228사건에 대한 언급은 금기시되었다.
'228평화기념일'(二二八和平紀念日)은 1997년 2월 25일 대만 총통이자 국민당 주석이던 리덩후이(李登輝)가 희생자 가족에게 사죄를 표하고 이날을 국가 공휴일로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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