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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인 기고] 대만 군대 생활(2) - 중국과 인접한 진먼(金門)에서 11주간 후회없는 군복무를 하다

 *편집자 주: 대만인 독자께서 한국어로 직접 정성스럽게 써서 보내주셨습니다. 최소한의 편집으로 원고의 느낌을 살리고자 하였습니다. 대만스러운 표현이 있더라도 양해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본 원고는 '대만은 지금'의 의도와는 무관함을 알려드립니다.

[대만인 차오중닝 제공(이하 사진 동일)]


[글 = 대만인 차오중닝(曹仲寧)]

5주 기초군사훈련을 끝낸 후에 제 2단계에 들어갔다. 예전에는 기초군사훈련을 끝낸 후에 다른 훈련소에 가서 군사특기훈련을 받아야 했다. 그런데 지금은 같은 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과 군사특기훈련을 받는 것이 대부분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입영할 때부터 제대할 때까지는 같은 훈련소에서 군사훈련을 받는 것이다. 

그런데 기초군사훈련 기간에 조교는 신병들에게 “진먼,마쭈 같은 대만과 떨어진 섬에 있는 부대에서 복무할 신병들이 있느냐”고 물었다. 사람들은 진먼(金門),마쭈(馬祖)에 있는 군대에 가는 것은 “금마상을 받았다”고 농담한다. 극단적인 기후, 외진 지리적 조건, 무료한 생활 때문에 이런 곳을 원하지 않는다. 4개월 군사훈련 기간 동안 많은 것을 배우지 못한다. 4개월의 시간을 낭비해야 할 바에 차라리 남들이 가고 싶어하지 않는 부속섬에서 복무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기초군사훈련을 받았을 때 조교에게 “내가 진먼에 복무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훈련소를 떠난 날, 다른 섬에서의 복무를 원했던 나는 다른 이병들과 버스를 타고 가오슝(高雄)에 있는 한 협소하고 낡고 지저분한 부대로 갔다. 우리는 그곳에서 하룻밤을 묵어야 했다. 입영한 날과 마찬가지로 그 부대에서 많은 자료를 기입하고 다시 분대를 편성하고,새로운 간부들을 알게 되고 주의 사항을 들어야 했다. 허둥지둥 뭔가를 많이 한 후 일찍 자야 했다. 익일에 새벽 4시에 일어나서 핑둥(屏東) 군용 공항으로 이동해 진먼에 가는 군용기를 탑승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다음 날, 아직 동이 트지 않았을 때, 우리는 기상해 출발 준비를 했다. 그뒤 서둘러 군용 트럭을 타고 핑둥 군용 공항으로 갔다. 우리가 탑승했던 군용기는 세계 여러 나라 군대의 주요 전술기인 C-130이었다. 군용기 안에 시끄러운 소음을 들었다. 귀청이 찢어질 것 같은 소음 때문에 귀마개를 껴야했다. 게다가 기내로 빛도 거의 안 들어왔다. 물론 구름 위에 있는 경치도 잘 구경하지 못했다. 이것은 내게 신기한 첫 경험이었다. 

C-130 내부



진먼은 대만 섬에서 서쪽으로 약 270km 떨어진 섬이다. 50분쯤 후에 진먼에 도착했다. 처음으로 진먼의 땅을 밟아서 기대도 되고 긴장도 되었다. 무성한 방풍림, 서늘한 바람, 구불구불한 산길, 한가롭게 풀을 뜯는 소떼는 내가 진먼에 대한 첫인상이다. 미지와 신기함으로 가득 차 있는 격전지는 사람들로 하여금 탐험하고 싶게 하였다. 하지만 고생 많이 받을지 모르는 훈련은 사람들로 하여금 걱정하게 하였다. 나는 이런 마음으로 군대 생활을 시작했다.

진먼 여행시 반드시 들러야 할 장소 타이우산 


진먼 도착 후 1주일 동안, 훈련은 편했다. 우리는 진먼방위지휘부대 역사관을 참관했다. 내 생각에 부대역사관이라기보다 진먼 근대 군사 역사 전시관에 가까웠다. 823포격전, 구닝터우(古寧頭) 전투, 다단(大膽)/얼단(二膽) 섬 전투의 세례를 겪고 나라의 강토를 지키는 튼튼한 요새일 뿐만 아니라 국군의 사기를 진작시키는 역할도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진먼에 가는 이병들은 겸사겸사 복무하고 여행도 하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부대는 우리에게 진먼의 관광, 특산품, 진먼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하는 방법도 소개했다. 그리고 지먼에 있는 부대의 장관이 맡은 지원병 모집 강의도 있었다. 2주차부터 정식적으로 훈련을 시작했다. 진먼 군대생활 기간,  군가를 연습하는 것이 큰 몫을 차지한 것 같다. 조교는 며칠 간격으로 우리에게 군가 한 곡을 가르쳤다. 군사특기훈련 기간, 총 10 곡의 군가를 배웠다. 심지어 진먼방위대대 소속 군인아니라 진먼육군합창단 소속 군인이 된 것 같은 느낌들 정도였다. 많은 군가는 멜로디와 가사를 억지로 끼워 맞춘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슴을 설레게 하거나 피를 끓게 하는 멜로디도 있었다. 매일 군가를 불러 그런지 몰라도 제대 후 군가를 들을 때마다 그때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또한 T85유탄 발사기, M72 LAW를 사용법도 배웠다. 사격술 예비훈련 몇 번 받은 후에 사격장에 가고 실사격을 했다. 한번에 T65돌격소총으로 실사격했을 때, 상사는 우리 분대에게 직접 탄알을 세어보라고 했다. 탄알을 세어보는 것은 힘들고 지루했다. 뜨거운 태양 아래 얼마 지나지 않아 땀이 비 오듯 했다. 때마침 사격장에 몇 마리의 공작새가 보였다! 이 공작새는 1999년 태풍 '댄' 때문에 진먼 가축 연구 기관에 있는 공작새장이 부서지면서 공작새가 밖으로 나와 진먼에 서식하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공작새가 대량으로 번식할 경우 생태계는 물론 비행 안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한다. 조교는 공작새를 포획해 현청에게 주면  600대만달러를 받을 수 있다고 알려줬다.  

가장 인상적인 실사격은 야간 사격이다. 군대생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야간 사격을 했다. 가늠쇠에 있는 트리튬이 빛만 통해 쏘는 것 같았다. 표적이 거의 안보이기 때문에 분대장이 "그냥 쏴라"라고 친절하게 조언도 해줬다. 사격장에서 볼 수 있는 별이 빛나는 하늘밤은 더욱 인상적이었다. 눈을 잠시라도 깜박이기 아쉬울 정도로 멋졌다. 장소 등불을 끌 때 하늘에 있는 오리온자리를 몰래 바라보았다. 낮에 황량해 보이는 사격장은 그날 밤만큼 낭만 그 자체였다. 

실사격을 하는 날 익일에 장비를 정비하는 것이 보통이다. 사격장의 잡초에 더럽혀진 총기를 청소하고 탄약이 남긴 오물을 닦었다. 이 시간은 좀 편했다. 우리는 늘 총기를 청소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총기 손질 시간은 다른 전우들과 감정을 쌓을 수 있는 기회다. 

군생활 중 특이한 것은 실제 행군을 한 적이 없다는 점이다. 행군할 때는 단독군장을 입고 총기를 가지고 15㎏가량의 무기와 장비를 온몸으로 메고 15㎞를 걸어야 한다. 연습을 해 본 적이 있었지만 행군하는 날 비가 오거나 한파가 닥쳐 일정이 변경됐다. 행군으로 인해 허리와 다리가 쑤시는 일은 다행히 피했지만 걸으면서 진먼의 풍경을 구경할 기회가 별로 없어 아쉽기도 했다.

규율을 따른다는 것은 군대의 질서를 유지할 수 있다. 특히 생활관의 청결을 잘 유지해야 한다. 매일 청소를 확실히 하고, 개인위생도 철저히 하는 것이 중시됐다. 매일 아침 조교들은 우리의 관물대, 침대, 침대 밑에 있는 것 같은 나무를 평가했다. 조교들의 평가가 엄격하다고 생각했다. 이불, 모기장을 네모 반듯하게 두부 모양으로 접고, 베개 커버가 베개를 완전히 덮어 씌우고, 침대 밑에 있는 운동화, 슬리퍼가 앞뒤를 맞추고, 철제 대야 안에 들어 있는 세면 용품도 규칙에 따라 놓아야 된다. 이불, 모기장, 베개 커버가 반듯하지 않거나 주름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감점을 받는다. 침대 밑에 있는 것들도 규칙에 안 따르면 감점 대상이다. 이렇게 감점이 계속되어 쌓이면 일요일 외출시 늦게 외출해야 한다. 더욱 많은 감점을 받으면 부대 안에만 있어야 한다. 내무실이 깨끗하고 깔끔하거나, 수업을 들 때 능동적으로 대답하거나, 군가를 잘 부르거나, 단체게임 때 좋은 성적을 받으면 가산점을 받을 수 있었지만 쉽지 않았다. 그래서 매일 일어난 후에 항상 꼼꼼히 내무실을 정리했다. 매일 오후 내무실 평가가 있을 때마다 항상 긴장되었다. 평가는 종이에 쓰고 광고판에 붙이는 식이었다. 만약에 감점을 많이 받으면 모처럼의 휴가 때 즐겁게 보내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내무실


체력 유지도 군인들에게 꼭 필요한 조건이다. 매일 오후 3시부터 4시까지는 운동시간이었다. 운동시간에 중대장과 분대장들은 전 중대의 이병과 조깅을 하고, 때로는 간부들이 운동 효과를 누릴 수 있는 재미있는 경기를 생각해 하기도 했다. 우리가 그것을 잘하면 농구, 배드민턴, 배구, 피구를 할 수 있게 해줬다. 제대할 무렵 중대장은 우리들을 연병장에 나가도록 하기도 했다. 토요일 오후에는 단체 게임이 있었다. 노래대회도 있었다. 각 분대 한 명이 나와 노래를 부르거나 평소 엄격했던 간부들이 노래를 한 곡 부르기도 했다. 평소 수줍어하던 나 역시도 사회자로 떠밀려 사회를 보기도 했다. 크리스마스 때는 크리스마스 파티도 하고, 패스트 푸드도 먹으면서 각 분대가 준비한 공연도 봤다. 대만 본섬에 있는 부대에 비하면 진먼 군대생활은 다채로웠다.

펑후, 진먼, 마쭈에 있는 부대의 휴가 제도는 대만 본섬에 위치한 부대와 다르다. 대만 본섬내 부대는 주말과 빨간 날에는 쉰다. 그런데 진먼 부대는 일요일만 쉰다. 왜냐하면 다른 섬에서 복무하는 이병들이 주말에 대만 본섬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휴가를 못 간 토요일과 빨간 날을 누적해 복무 기간 중간 일주일 동안 “반대(返台:대만 본섬에 돌아간다는 뜻)휴가”와 제대하기 전 3일간 “이영 휴가”를 실행한다. 일요일은 보통 “다오슈(島休)”라고 불린다. 쉬기는 쉬지만 섬에 머문다는 뜻이다. 첫 다오슈 때는 분대장이 진먼에 익숙하지 않은 분대원들을 데리고 진먼을 소개하며 같이 여행을 했다. 이렇게 일요일에는 길동무가 되어 진먼 곳곳을 여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의 취미는 역사와 여행이라서 일요일마다 관광지에 꼭 갔다. 

기고자가 경험한 첫 다오슈 기념 사진


중국과 격전을 벌인 곳으로 유명한 진먼은 지금도 과거에 사용했던 갱도, 토치카 등 군사장비를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있어 과거 전쟁의 흔적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 예전에 포격을 피하기 위해서 지하에 갱도를 많이 뚫었다. 진먼은 마쭈 열도와 함께 중화민국 정부가 많은 국민들의 죽음을 무릎쓰고라도 지켜야 하는 곳으로 이곳의 계엄령은 대만 본섬과 달리 1992년까지 유지되었다. 임산부, 55세 이상 노인을 제외하고 거주민이 '민간 자위대' 임무에 편성되어 있다. 갱도를 통해 전쟁이 발생하면 마을마다 독자적인 작전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제일 유명한 자이산(翟山)갱도는 군용산을 숨기기 위한 곳으로 사용됐으나 지금은 갱도의 수로를 공연무대로 삼아 음악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자이산 갱도


진먼에서 유명한 기념품으로 식칼을 꼽는다. 식칼은 진먼 포격전에 사용된 47만여 발의 포탄의 껍질로 만든다. 이 껍질은 매우 철제로 만들어졌는데, 진먼섬의 주민들은 이를 재활용하여 칼을 만들어 오고 있다. 포탄으로 만든 식칼은 견고하고 내구성이 있어서 인기가 많다. 

포탄껍질로 칼을 만드는 모습


군사장비를 제외한, 진먼에서 산책하면 많은 민남식 전통 가옥과 몇 개씩의 양루에 눈이 간다. 명나라 왕조는 해적의 침입을 막고 거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천호소성(千戶所城)’이라는 성을 축조했다. 천호소성 축조 이후 사람들이 진먼에 많이 살게 됐다. 이후 진먼에서는 양루도 발전했다. 외딴 지리적 위치 덕분에 옛날 건물, 거리를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 과거 진먼은 생활이 많이 어려워서 많은 젊은이들이 일을 찾아 하나둘씩 고향을 떠나 동남아, 일본으로 가는 이민붐을 겪었다. 그러다가 외국에서 성공한 화교들이 고향을 그리워하여 진먼으로 돌아와 동남아 문화와 민남문화를 융합한 서양식 건물인 양루를 지었다. 이 무렵은 청나라 중기와 말기 때였다. 

게다가, 동북부나 남서부에서 오는 계절풍을 영향으로 강풍이 일어나서 “펑스예(風獅爺)”라고 불리는 수호신가 여러 마을에 흩어져 있다. 입을 벌리고 웃고 있거나 부조개가 있는 것 등 저마다 다양한 표정을 짓고 있는 펑스예를 볼 수 있어서 재미있다. 

또한, 진먼은 푸른 바다와 끝없이 넓은 푸른 하늘 둘러싸여서 바닷가도 갈 수 있다. 가장 특별한 바닷가는 오추어(歐厝)바닷가다. 썰물 시간에 바닷가에 빠져 폐기된 탱크  M18헐캣도 구경할 수 있다. 



그리고 진먼 섬 서쪽에는 샤오진먼(小金門)이 있다. 이곳은 중국 샤먼(廈門)과 6km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샤오진먼 바닷가에 가면 맞은편에 자리 잡고 있는 번화한 샤먼의 풍경을 볼 수 있어서 신기하다. 

진먼은 관광지로 유명할 뿐만 아니라 사람들도 친절하다. 대만 사람은 진먼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대만에 비해 진먼 사람은 중국에 대해 더 높은 정체성을 갖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사실 진먼에 가기 전에는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로 진먼사람과  지내 보니, 진먼 사람은 낯선 사람들에게 아주 친절하고 반갑게 맞아 준다고 느꼈다. 


특산품 가게를 운영하는 진먼 아가씨와 함께


다우슈 때 훈련소에 가 본 적이 있는 아가씨가 경영하는 특산품 가게에 갔 때, 우리가 특산품을 안 사는데도 그 아가씨가 우리에게 고소하고 섬세한 공탕(貢糖)과 미끌미끌한 몐셴(麵線)을 항상 환대해 주었다. 그리고 진먼 사람과 이야기를 나눠서 진먼 사람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었다.



대만 본섬 사람들에 비해 진먼 사람들은 “중화민국”에 대한 더 깊은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중화민국은 중국 국민당이 중화인민공화국과 중국 공산당에게 패하자 1949년에 타이완 섬으로 정부를 옮겨간 '정권'이다. 대만은 군사 독재를 겪은 뒤 시민들의 힘으로 민주화를 이룬 '나라'다. 

예전에 전선에 위치한 진먼, 마쭈 사람이 중국 공산당을 역공하려고 한 중화민국을 지키기 위하여 전 주민이 군대를 통솔하고 독자적인 작전 능력을 갖춰야 했다. 진먼, 마쭈는 경제발전이 제한됐다. 

민방대의 훈련을 받았는지는 몰라도 다우슈 때 만났던 아주머니는 군복을 입은 우리를 보고는  “나의 전투 능력이 너희보다 뛰어나지. 만약에 적군들이 포탄을 투척한다면, 나는 포탄이 어디 떨어질지 안다”고 말했다! 

그리고 대만은 고도의 경제 성장으로 한국, 홍콩, 싱가포르와 함께 “아시아 네 마리 용”아라고 불린다. 차이가 점점 커져서 다른 정체성이 되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진먼은 위풍당당한 군사적인 시설을 가지고, 고풍스러운 역사 유적도 간직하고 있고, 힐링된 바닷가, 하늘도 보유하고, 상냥한 사람도 많이 있어서 정말 좋은 곳이다! 



11주 진먼 군대생활을 돌아보면서 내가 진먼 복무를 자원한 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현명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4개월 군사훈련은 배울거리가 부족하고 일부 간부들도 부패하긴 했지만, 동고동락한 전우들을 만나게 되어서 알찼다. 우리가 늘 함께 지내고 휴가 때 섬에서 같이 여행해서 우정도 깊어졌다. 대만 각지에서 온 전우들이 진먼에 모였다. 모래시계처럼 생긴 섬에서 나라를 지켰다. 진먼에서 시도 때도 없이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과 황사를 느꼈다.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에서 군가를 함께 부르고 중대장의 교훈을 들었다. 하늘을 철새들과 눈부시게 아름다운 노을를 같이 구경했다. 휴가 때 섬에서 정력을 들이고 격전지의 매력을 같이 체험했다. 

깊고 신비한 갱도, 우뚝 솟은 토치카, 옛날 공군을 방어하기 위해서 말뚝을 놓은 바닷가, 연미 혹은 말등 모양의 집채를 가지고 있는 전통 민남식 가옥, 중국과 서양의 장점을 고루 갖추어져 있는 양루는 진먼 가장 특별한 풍경이다. 시간이 흘러가고 전역할 때, 군대에서 겪었던 재미있는 일, 힘든 군사훈련, 섬 여행따위가 고운 모래처럼 다듬어져 알차고 멋진 모래 언덕 하나로 완성된 것 같다. 



전편 보기(누르면 이동)

[대만인 기고] 대만 군대 생활(1) - 청궁링(成功嶺)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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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5일은 성탄절이다. 한국에서는 당연히 공휴일이다. 시내 한복판 길거리에서는 자선냄비와 캐롤을 쉽게 들을 수 있다. 하지만 대만에서는 쇼핑몰이나 백화점 주변을 제외하고는 크리스마스 풍경을 쉽게 찾아볼 수 없다. 아니 한국만큼 분위기가 나지 않는다. 반챠오 / ELLE 대만에서는 12월 25일은 휴일이 아니다. 눈를 씻고 봐도 대만 달력에는 성탄절이 없다. 12월 25일은 행헌기념일(行憲紀念日)이라고 써있을 뿐이다. 1963년부터 2000년까지 줄곧 국가기념일로 지정되어 쉬다가 2001년부터 휴일에 포함되지 않기 시작했다. 행헌기념일은 헌법을 시행한 기념일을 뜻한다. 중화민국의 헌법은 1947년 12월 25일에 시행되었다. 12월 25일의 법을 시행하기 시작한 것과 크리스마스는 우연의 일치일까? 중화민국 헌법 / 자료사진 1947년 당시 장제스(蔣介石)는 헌법 시행을 선포하는 라디오 연설에서 예수의 부활처럼 신중국 건설의 첫걸음을 향하기 위해 헌법을 시행하노라고 말했다.  의도적으로 성탄절에 맞춰 헌법을 시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많은 젊은이들은 모르고 있고 알 필요가 없다고 이야기한다. 국가의 헌법이 시행된 날보다 크리스마스를 더 잘 알고 있고, 25일이 한국처럼 공휴일이 되기를 원하고 있다.   +대만은지금   @  柳大叔, 愛臺灣的韓國人  (류정엽) 제보/후원/제휴 문의: nowformosa@gmail.com  Facebook  페이지: www.facebook.com/nowformosa →  바로가 기 카카오스토리 에서도  [대만은 지금]   을 만나세요! https://story.kakao.com/ch/nowformosa 다른 기사: [대만생활] 미리보는 2016년 타이베이101 불꽃놀이 [대만생활] 초대형 아울렛 'GLORIA OUTLET‘ 18일 오픈  [대만생활] 표백 숙주나물, 업자들의 공공연한 비밀? [대만사회] 버스정류장 12분 정차, 승객들 "천천히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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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타오위안 야구장 야외무대에 선 부산 롯데 자이언츠 응원단[류정엽 촬영=대만은 지금] [대만은지금 = 류정엽(柳大叔)] 대만 야구사상 최대 규모의 한류행사가 대만 북부 타오위안(桃園) 국제야구장에서 16일부터 이틀간 성황리에 개최됐다.

[대만생활] 대만 사람들이 뽑은 한국 음식 TOP 10

대만 사람들에게는 이미 한국 음식이 더 이상 낯설지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즐겨 먹고 있으며 심지어 한국 음식을 배우려는 사람도 증가하고 있다. 또한 대만에서 한국 음식점 수도 최근 2년 사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타이베이의 번화가에 가면 한 구역 건너 하나씩 볼 수 있다. 대만에서 먹는 한국 음식이 과연 한국에서 먹는 맛이 날까? 대부분의 대만 사람들의 의견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대부분이다. 비교적 로컬화된 음식을 팔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타지에 온 유학생이나 워홀러들에게는 이것마저도 고마울 따름이다. 한국에 살다 대만으로 온 한 미국인(영어강사)은 "대만의 한국 음식은 주인이 한국 사람이어도 한국 맛보다는 대만 맛이 더 강한 편"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음식이 현지인을 상대로 현지화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당연하다. 그래왔기에 오히려 한국 음식이 대만 사람들에게 더욱 사랑 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대만 최대 설문조사 사이트 데일리뷰(dailyview) 는 약 3만 여명을 대상으로 대만 사람들이 좋아하는 한국 음식 10개에 대해 투표 방식으로 설문 조사를 진행 했다. 조사는 2014년 10월부터 2015년 4월까지 총 6개월에 걸쳐 이루어졌다. 10위부터 살펴 보기로 하자. 10위. 짜장면 9위. 삼계탕 8위. 게장 7위. 설렁탕 6위. 닭갈비 5위. 떡볶이 4위. 족발 3위. 한국식 전류 (해물전, 김치전 등) 2위. 치킨 1위. 한국식 BBQ  대만 사람과 함께 식사할 기회가 있다면 한번 참고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대만은지금   @  柳大叔, 愛臺灣的韓國人 제보/후원/제휴 문의: nowformosa@gmail.com  Facebook Page: www.facebook.com/nowformo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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