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야시장 [류정엽 촬영=대만은 지금] |
[글 = 진상헌]
필자는 이전에 “대만 한식당 사장님들은 왜 주방에만 있을까?”라는 주제로 글을 쓴 적이 있다. 요약하자면 해외 창업을 준비하는 데 있어서 최우선 순위는 창업 자금이 아니라 해당 국가의 문화 및 현지인들과의 소통을 위한 언어 공부가 우선임을 강조했다. 야시장도 장소만 다를 뿐이지 엄연히 창업이고 이방인 신분임에는 변함이 없다. 그렇다면, 최우선 순위는 당연히 언어이다. 게다가 야시장은 언어를 못 한다는 핑계로 도피할? 주방도 없다. 손님에게 직접 주문을 받는 것부터 제조까지 혼자서 가능해야 한다. 그렇기에 언어는 다시 한번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그럼 그 다음 우선순위로 고려해야 할 부분은 무엇일까?
12년 전 최우수 사회자였으나 현재 야시장에서 샌드위치를 팔고 있는 대만 연예인 [민스(民視) 캡처] |
“시작이 반이다”라는 의지와 열정 등도 중요하지만 의욕만 앞서면 빈틈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 빈틈 사이로 파고드는 위험 상황은 (자국민은 벌금을 내고 해결될 문제가 외국인은 추방으로까지 이어지면 해외 창업의 꿈은 산산조각이 나는 것이다) 도와줄 사람이 없다. 해외 창업의 경우 누군가가 으레 하고 있으니 자금만 있으면 된다는 안일한 자세는 건설 현장에 안전모를 안 쓰고 들어가는 안전불감증과도 같다. 그래서 오늘 필자는 조심스럽지만 “할 말은 하자”라는 신념으로 이 글을 적어 본다.
대만에서 야시장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지역 문화를 깊숙이 알 수 있다. 대만에서 창업을 희망하는 외국인 중 비자 문제가 전혀 없다면 소자본으로 해볼 만한 곳이기도 하다. 먼저 마음을 열고 다가가면 허울 없이 맞이해 주는 대만 야시장 상인들은 볼 때마다 마치 어릴적 외할머니의 손을 잡고 바닷가 주변을 걸으면 갓 잡은 생선을 회를 떠서 나눠 주기도 하고 거리에서는 길을 잘못 들으면 잠시 앉았다 가라는 말을 들을 수 있던 1980, 90년대의 한국처럼 따뜻한 정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대만에서 외국인이 합법적으로 일을 하기 위해서는 대만 노동부에서 발급하는 공작증(Work Permit)이 있어야 한다. 이 공작증은 대만 노동부에서 외국인들이 대만에서 근무할 자격이 되는지 검토를 한 후에 발급이 되고 기간 내 공작증을 가지고 이민소로 가서 거류증 신청을 해야 한다. 사실, 공작증보다 중요한 것이 바로 이 거류증이다. 이것이 있어야 장기간 체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필자의 공작증은 거류증에 적혀 있는 대만 회사에서 근무한다는 전제로 거류증이 나오는 것이기에 야시장에서 일하는 것을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 즉, 야시장에서 일하면 불법 노동자로 간주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방법은 워킹 홀리데이 비자로 대만에서 생활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워킹 홀리데이 비자에 대해서 알고 있지만 간과하고 있는 것이 하나 있다. 워킹 홀리데이(Working Holiday)의 Workng은 '일', Holiday는 '휴가' 혹은 '여행'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말은 워킹 홀리데이 비자는 뒤에 오는 단어 “홀리데이” 에 좀 더 큰 의미를 부여하고 발급되는 비자이다. 다만 발급되는 대상들이 주로 20대이기 때문에 현지에서 일정 시간 시간에 따른 근무를 해서 스스로 여행 경비를 마련할 수 있도록 해주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비자이다.
그렇다면, 워킹 홀리데이 비자로 대만에 거주하는 외국인의 경우 야시장에서 고용인(사장) 자격으로 일 할 수 없다고 해석된다. (단, 피고용인은 가능하다) 대만에서 외국인 사장님이 되기 위해서는 합법적으로 대만 정부에서 사업 투자 승인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사업 투자 승인을 위해서는 사업체 주소지(월세 계약 혹은 건물 매입)가 필요한데 대만 정부에서 야시장을 사업체 주소로 인정하지 않는다. 실제로도 야시장에서 떡볶이를 팔다가 단속 나온 이민서의 경고를 받은 사례가 있는데 이들 또한 워킹 홀리데이 비자로 장사를 하는 중이었다. 마지막으로 예상한 분들도 계시겠지만 대만인과 결혼을 한 외국인의 경우는 문제가 없다.
2. 야시장의 화려한 불빛 뒤에는 생존을 위한 처절한 삶
입구 멀리서부터 반짝이는 수많은 불빛들과 그 틈 사이로 올라오는 하얀 연기들이 어두운 밤하늘 아래 피어오르며 야시장의 분위기. 이는 야시장 입구에 도착하기 전부터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다. 멀리서 봐도 북적 북적거리는 입구에 들어서면 닭장처럼 옹기종기 붙어 자리를 잡고 있는 매대에서는 상인들이 준비한 음식들을 알리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내 귀에 들려오기 시작하면 정신은 혼미해진다. 게다가, 야시장을 걸으며 내 앞뒤를 보면 다들 내 사람, 내 자식 놓칠세라 바짝 붙어서 걷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어릴 적 유치원 짝꿍과 함께 걷던 기억을 떠오르게 한다. 시야에는 다양하게 판매되는 음식 그리고 누구나 쉽게 도전해 볼 수 있거나 어릴 적 향수를 자극하는 수많은 놀이판이 쭉 펼쳐진다. 현지인들에게는 예전부터 연인과 가족들의 나들이 장소이며 여행객들에게는 대만의 문화를 경험함과 동시에 수십번은 와서 이것저것 먹어봐야 다 먹어 볼 만큼 셀 수 없이 많은 음식이 있는 이곳은 바로 대만의 야시장이다.
대만 정부의 최근 정책에 따라 야시장의 위생부터 적극적인 점검과 검토를 하고 있다. 가오슝에서 제일 큰 루이펑(瑞豐) 야시장 주차장에 위치한 공용 설거지장이 철거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라 생각된다. 임시 컨테이너 안에 수도꼭지 몇 개만 달려있는 이곳에서는 심한 악취가 나고 관리도 소홀해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불편하게 만들었다. 정부는 이 공간을 없애버렸다. 일부는 철거로 불편하다고 느낄 수 있겠으나 정부 차원에서의 적극적인 관리는 야시장이 지닌 '관광 문화 상품으로서의 가치'라고도 할 수 있겠다. 하지만 필자는 현장에서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정부의 이 같은 노력은 '야시장을 생계로 살아가는 수많은 대만 사람들'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손님 입장에서는 더위가 가시는 야(夜)심한 시간에 찾는 야시장이지만 그것을 준비하기 위해서 대부분의 상인은 낮부터 와서 준비한다. 대만 남부 한여름의 온도는 섭씨 30도를 넘나든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어도 높은 습도에 땀이 줄줄 흐르는 곳에서 오늘 하루를 위해서 아니 오늘 밤을 위해서 매대에 묶어 놓은 줄들을 풀면서 그들의 하루는 생각보다 일찍 시작된다.
대만은 대개 가족 단위로 야시장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다. 아직 10대 초반으로 보이는 어린 친구들도 집안 사업을 돕는 경우가 다반사다. 참 대견스럽게 봐줄 만하다. 그러나 필자는 일부 상인들이 걷지도 못하는 유아를 큰 플라스틱 박스에 넣어두고 장사를 하는 모습을 본 적도 있다. 필자의 어린 시절 커다란 붉은색 다라이에 물을 가득 채워서 동생과 놀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플라스틱 박스 속 아이는 어른들의 보살핌을 받지 못했다. 종종 아이는 울기도 하지만 밀린 주문에 어른들은 아이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다. 밀린 주문으로 아이를 제대로 돌볼 수 없으니 그 마음이 오죽할까라며 그들의 속사정을 이해하려 해보기도 했다. 하긴, 아직 아이도 없는 필자가 그 속을 어찌 다 이해하랴. 이러한 현실 때문인지 대만 정부는 불법이라는 명분으로 야시장 상인들에게 엄격한 기준을 들이대지 못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3. 그래도, 야시장에서 일하고 싶다면?
필자는 지금도 한 달에 1~2번 야시장을 찾는다. 지금도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묵묵히 장사를 하고 있는 상인들과 나누며 새로 이곳에서 꿈을 펼치는 상인들의 모습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물론, 여기서 대만의 트렌드를 간접적으로 공부할 수도 있다. 최근에는 외국인들의 입점도 제법 많이 늘었다. 불과 1~2년 전만 하더라도 외국인이 야시장에서 일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영역 같은 분위기가 있었는데 최근에는 한국인뿐만 아니라 서방 국가에서 온 친구들도 부쩍 늘었다.
야시장에서 삼삼오오 모여서 긴 시간 밤을 함께 보내던 동료 상인들이 생각이 난다. 필자의 바로 옆에서 홍차를 파는 옆집 사장님은 집안의 생계를 위해서 아침에는 상하차 일을 하고 밤에는 야시장에서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들과 홍차를 팔고 있다. 가끔은 사장님의 여동생과 그의 남편이 와서 돕기도 했는데 대부분은 아빠와 아들이 함께 하는 편이다. 아들은 야시장에 땅거미가 깔릴 무렵 대만식 도시락을 금세 먹어 치운 후 익숙하게 아빠를 돕기 시작한다. 각자의 일터에서 또 학교에서 돌아온 그들은 휴식 대신 일을 하면서 피곤할 법도 하지만 늘 유쾌한 미소가 무기인 사장님은 천상 야시장 상인인가 보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야시장의 일부분이다. 일부분을 확대 해석할 순 없지만, 내가 경험한 야시장은 그랬다. 그래서일까, 가끔은 너무 많은 외국인들의 입점이 우려도 되는 건 사실이다. 정말 이것이 아니면 거리에 나 앉아야 할 수도 있는 사람들인데 누구보다 절박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 틈 사이로 언젠가는 고국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은 외국인들이 물밀듯 들어오고 있다. 마치, 옛것을 잘 지키고 있던 인사동 거리를 대기업 프랜차이즈들이 장악해서 정작 터줏대감들은 갈 곳을 잃어버리고 인사동 특유의 매력은 사라져 더 이상 사람들이 찾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유동 인구가 많은 곳에 프랜차이즈 회사들이 건물주에 웃돈을 주고 입점을 하는 것은 매출보다는 홍보 효과를 기대하는 것처럼 일부 외국인들은 생존과 생활을 위한 그 자체보다는 단순한 재미와 경험 혹은 스펙 쌓기를 목적으로 야시장에서 장사를 하려는 건 아닌지 말이다.
외국인들이 대만인들의 영역인 야시장으로 오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한명 한명 붙잡고 물어보지 않는 이상은 자세히 알 방법이 없다. 단, 그들에게는 없는 것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진정성이다. 여기서 말하는 진정성은 절박함을 말한다. 정말 이것이 없으면 거리에 나 앉아야 될 수도 있다. 그렇기에 언젠가는 고국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은 외국인에게는 야시장이 절박함을 가진 상인과는 다르게 느껴지리라 생각된다.
대만 야시장 [류정엽 촬영=대만은 지금] |
진상헌 - 대만 외식 브랜드 T.K.K에서 한국 브랜드 런칭을 담당하는 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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