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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생 국민당 최연소 대변인이 당에 발을 들인 이유

 

훙위첸(洪于茜) 국민당 대변인 [연합보 캡처]

[대만은 지금 = 류정엽(柳大叔)]

지난해 12월 국민당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대만인 중 20~29세, 30~39세 청년들 대부분은 민진당과 민중당을 지지하는 반면 50대 이하는 국민당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국민당에 가입해서 활동하는 젊은이들도 적지 않다. 그중 최근 언론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는 훙위첸(洪于茜) 국민당 대변인이 주목 받고 있다. 국민당의 다섯 대변인 중 막내다.

대만 뉴토크, 중국시보  등에 따르면, 170cm 키의 1994년생 미혼인 훙위첸은 타이베이의학대학(台北醫學大學醫) 의무관리과(병원경영)를 졸업하고 제약회사인 대만 바이엘 CSR에서 근무했다. 

그는 장펑(長風)기금회의 프로젝트 인턴을 거쳐 국민당에 발을 들였다.

그는 모델급 신체적 조건에 기질이 좋고 예쁠 뿐만 아니라 말을 분명하고 체계적으로해 국민당에서 주목 받았다. 그러면서 장치천(江啟臣) 국민당 주석체제가 출범하면서 국민당 대변인으로 발탁됐다.

그는 언론에서 자신이 국민당에 가입하게 된 이유를 밝혔다. 그는 자신의 성격이 반항적이어서 실제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 시스템에 들어가야 한다고 느꼈다고 밝혔다. 그는 국민당 청년연맹 대표를 역임하기도 했다. 그는 (내부적) 갈등이 심한 민진당에 비해 합리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으며, 더 중요한 것은 그는 국가 정체성이 중화민국이라고 말했다. 

훙위첸의 집안은 국민당을 지지하기는 하지만 국민당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고등학교 때 국민당이 주최한 캠프에 고등학교 때 국민당이 주최한 지역사회 보호 및 국제봉사 관련 리더십 프로그램에 학교 대표로 참여했다. 50개 고등학교가 참여했다. 그는 활동 목적이 국제적인 비전과 문화적 육성을 함양하기 위함이었고 당시 활동 내용은 매우 비정치적이었다고 회상하면서 그는 이 활동이 마잉주 정부 시절 청년 육성 및 창업계획과 관련 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에 제약회사에서 회사내 언론과 홍보업무를 맡았고 국민당 입당은 갑작스러운 결정이었다고 했다. 그가 고등학교 때 참가한 국민당 주최 캠프는 그에게 공공정책 분야에 관심을 갖게 만들었고 이는 후에 그가 사회 봉사활동에 지속적으로 참가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정치에는 무관심했다. 

그는 대학생 시절에 국민당에 본격적으로 발을 디딘 것으로 보인다. 대학 기간 중 국민당 청년단은 여름방학을 맞이한 대학생을 대상으로 민주정치실천 관련 활동을 열었고, 이 때 그는 여기에 참가해 모의로 실시된 타이중시장 선거에 당선이 되었다. 

그뒤 그는 2015년까지 국민당청년단에서 인턴으로 일하며 정치적 안목을 길렀고, 이어 국민당 청년단 총단장을 맡으며 국민당에 발을 디딘 것으로 알려졌다. 

훙위천 국민당 대변인[중국시보 캡처]


훙위첸은 국민당 가입 당시 당에 대한 호감도가 특별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자신의 친구들과 사회 사이에서, 특히 젊은이들에게 국민당은 용납되지 않으며 반항적이라고만 느꼈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눈으로 직접 보는 것만 믿기에 자신을 통해 이해하고 싶어했다. 그는 해석하고자 하는 관점에 대한 권리는 자신에게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국민당 입당 당시 사회적 불일치를 해결해야 한다고 느꼈고, 이 문제를 위해 직접 그 시스템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학창 시절은 민진당 천수이볜 정권과 국민당 마잉주 정권을 거쳤다. 그는 천수이볜 부패 사건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으며 마잉주 시대의 국민당 집정 시기가 더 합리적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가장 중요한 점으로 자신이 중화민국을 지지하고, 자신의 국가정체성은 중화민국이라는 점을 꼽았다. 그는 모든이들이 국가정체성에 대해 다른 해석을 하고 있다면서 그가 생각하는 중화민국은 1912년  건국되었고, 대만을 포함한 중국 전역을 통치했으나 1949년 이후 부터 대만 및 부속섬(진먼, 펑후, 마쭈)을 통치하며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자신에게 있어 중화민국은 이미 주권독립국가라고 강조하면서 한편으로 억압을 받고 있지만 어떻게 해야 세계로 나가는 발판을 다질 수 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는 대만독립에 대해, 중화민국과는 다른 개념인 대만 독립은 국가명과 역사적 맥락이 완전히 달라서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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